[전문가 칼럼] 탄소배출권 3만 원 시대, 가격 상승을 시장 정상화라 부를 수 있는가

편집국 / 기사승인 : 2026-09-14 12:45:32

[HBN뉴스 = 편집국] 한때 톤당 8000원 안팎까지 떨어졌던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근 3만 원 수준까지 올라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낮은 배출권 가격 때문에 “탄소를 줄이는 것보다 배출권을 사는 것이 싸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변화다. 올해 들어 가격은 6월 한때 3만 원 안팎을 치솟았다가 조정을 거쳤고, 8월 말 탄소중립법 개정 통과 여파로 다시 3만 원선을 넘어섰다. 급등과 조정을 반복하며 상승한 이 가격에 일각에서는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이 비로소 정상화 국면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임욱빈 한성대학교 교수. [사진=HBN뉴스]

 

그러나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이 정상화됐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탄소배출권 시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좋은 탄소시장의 기준은 배출권 가격이 높으냐 낮으냐가 아니다. 기업의 감축비용과 미래의 탄소규제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가격이 형성되고, 충분한 유동성 속에서 그 가격이 기업의 실제 감축투자를 유도하느냐가 중요하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일반 상품의 가격과 조금 다르다. 정부가 배출허용총량을 결정하고 기업별 할당량을 정하는 순간 시장의 공급조건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가격 수준 자체보다 그 가격이 어떤 정보와 수급에 의해 형성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최근 국내 배출권 가격 상승에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에 대한 기대와 수급 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제4차 계획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이며, 배출허용총량이 이전 계획기간보다 약 17% 축소되고 유상할당도 확대된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올해 15%에서 2030년까지 50%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출권이 이전보다 귀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향후 부족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인 매수 움직임이 나타났고, 잉여 배출권을 보유한 기업들이 매도를 미루는 것도 상승을 부추겼다.

 

가격 상승 자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기업 입장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온실가스 감축설비에 투자할 유인이 약해진다. 예를 들어 탄소 1톤을 줄이는 데 3만 원의 비용이 필요한데 시장에서 배출권을 1만 원에 살 수 있다면 기업은 감축투자보다 배출권 구매를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탄소가격이 적정 수준에서 형성돼야 기업의 감축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탄소가격’과 ‘좋은 탄소가격’을 구분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올해 국내 배출권시장은 불과 몇 달 사이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감축 유인이 사라지지만, 반대로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 기업의 원가 부담과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처럼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은 제4차 계획기간에서도 탄소누출 우려업종으로서 무상할당이 유지되지만, 배출권 가격 상승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압박과 공급망 전반의 탄소비용을 통해 생산원가와 투자계획에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따라서 탄소시장의 성숙도를 평가하려면 가격보다 먼저 세 가지를 봐야 한다.

 

첫째는 가격발견 기능이다.

 

배출권 가격이 실제 탄소감축 비용과 미래의 수급 전망을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발표나 할당량 변화에 따라 가격이 지나치게 출렁인다면 기업은 그 가격을 장기 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올해처럼 몇 달 사이 급등과 조정이 반복되는 시장에서 기업은 가격을 장기 계획의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

 

둘째는 시장 유동성이다. 

 

가격이 높더라도 거래가 충분하지 않으면 건전한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7월 KAU25 가격은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지만 누적거래량은 전월 대비 크게 감소했다. 가격 상승과 시장 활성화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시장 참여자가 충분하고 필요한 시점에 적정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어야 비로소 시장가격을 신뢰할 수 있다.

 

셋째는 가격이 실제 기업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는가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목적은 배출권 거래 자체를 활성화하는 데 있지 않다. 궁극적인 목적은 시장의 가격신호를 통해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배출권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기업의 설비투자, 에너지 전환, 공정혁신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제도의 본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계에서도 “배출권 가격이 오른다고 바로 감축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회계와 경영의 관점에서도 탄소가격의 의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출권 가격이 1만 원일 때와 3만 원일 때 기업이 부담하는 탄소의 경제적 비용은 전혀 다르다. 배출권 구매비용뿐 아니라 감축설비 투자 의사결정, 제품원가, 투자수익성, 현금흐름과 기업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배출권을 보유한 기업과 부족한 기업의 재무 상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이제는 그 차이가 공시와 투자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제 탄소가격은 환경부서만 관리하는 숫자가 아니라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그리고 재무·회계 담당자가 함께 살펴야 할 경영정보가 되고 있다.

 

특히 수출기업에는 더 중요한 문제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비롯해 글로벌 무역질서가 탄소가격을 기업 경쟁력과 연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은 제품을 얼마나 싸고 잘 만드는지만으로 경쟁하기 어렵다. 제품 한 단위를 생산하면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으며, 그 탄소비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했는지가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4차 계획기간에 도입되는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는 이런 점에서 중요한 실험이다.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경매물량을 조정하고, 반대로 가격이 급등하면 시장안정화 예비분을 활용하는 등 기존의 재량적 시장 개입을 보다 예측 가능한 준칙 기반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시장 참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언제 개입할지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칙 아래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이다. 다만 세부 운영기준이 아직 다듬어지는 단계라는 점에서 그 효과는 앞으로의 운영이 보여줄 과제다.

 

하지만 제도 하나만으로 탄소시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단순한 규제 대응 비용이 아니라 중장기 경영전략의 변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금융기관과 시장 참여자의 역할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배출량과 감축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의 신뢰성이 시장의 기반이 돼야 한다.

 

탄소시장의 목적은 배출권 가격을 올리는 데 있지 않다. 가격을 통해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 데 있다. 가격이 올라 기업이 배출권을 더 많이 사는 데 그친다면 성공한 탄소시장이라고 하기 어렵다. 반대로 예측 가능한 탄소가격이 기업으로 하여금 감축설비와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도록 만든다면 비로소 시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의 3만 원 수준의 탄소배출권 가격을 시장 정상화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정상화를 향한 ‘시험대’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배출권 가격이 3만 원을 넘느냐 다시 내려가느냐가 아니다. 그 가격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이다.

 

탄소가격은 환경의 가격인 동시에 미래 산업경쟁력의 가격이다. 한국 탄소시장이 진정한 정상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는 가격이 얼마가 됐을 때가 아니라, 기업이 그 가격을 믿고 미래의 감축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글쓴이 임욱빈 교수> 


- 현 한성대학교 비즈니스컨설팅학과 교수(학과장), ESG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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