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천여 건 기술문서 확보…'한화판 우주 전력' 윤곽
러-우 전쟁서 입증, 치트키처럼 적의 위치·전력 파악
[하비엔뉴스 = 이동훈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 최초 우주 발사체 ‘누리호’의 전주기 기술을 이전받으며, 전략게임의 치트키처럼 전장을 꿰뚫는 ‘우주방산’ 시대의 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보·통신·수송을 아우르는 우주 기반 전력 확보를 통해, 미래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마지막 퍼즐을 손에 넣었다는 진단이다.
25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국내 독자 개발 우주 발사체 ‘누리호’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누리호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4년에 걸쳐 항우연 주도하에 300여 개 민간기업이 참여해 함께 개발한 우주 발사체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자국 기술로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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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링크 등 인공위성 통신망 시스템은 우주에서 적군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전장의 판도를 바꾼다. [사진=픽사베이] |
이번 계약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다. 14년에 걸쳐 축적된 설계, 제작, 발사운용 기술이 담긴 1만6050건의 문서를 바탕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를 직접 제작·발사할 수 있는 권리를 2032년까지 확보하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평가기관의 검증을 거친 기술 가치는 240억 원.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한화의 기존 방산 역량과 결합해 ‘우주 기반 전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현실로 끌어낼 가능성이다.
이 같은 민간 우주 수송 역량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뚜렷이 입증된 바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전면 침공 초기에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전세를 반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민간기업 스페이스X가 제공한 저궤도 위성통신망, ‘스타링크’가 있었다.
스타링크는 지상에서의 전파 교란이나 통신 인프라 파괴에 상관없이, 실시간 지도 작성과 부대 간 통신, 표적 식별을 가능하게 했다. 전장에서의 ‘안개’를 걷어낸다는 점에서, 이는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 “black sheep wall”(전장 전체를 밝히는 명령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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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진행된 '누리호 기술이전 계약' 체결식에 참석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우연, 우주청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
전략 게임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는 다양한 치트키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black sheep wall’은 게임의 판도를 단숨에 바꿀 수 있는 치트로 유명하다. 입력하는 순간, 전장의 모든 안개(Fog of War)가 사라지며 맵 전체가 환히 밝혀진다.
게임 내 안개는 적의 위치와 동태를 숨기는 핵심 장치다. 플레이어는 정찰 유닛을 보내 상대 기지를 탐색하거나, 병력 이동을 통해 서서히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black sheep wall’ 치트는 이러한 전략적 탐색 과정을 단숨에 무력화시킨다. 적의 병력, 건물, 자원 확보 상황은 물론 이동 경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보 격차는 전략 게임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상대의 전략을 미리 읽고 카운터 병력을 준비하거나, 기습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자원 확장이나 공격 타이밍 설정도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어 사실상 ‘신의 시점(God view)’을 부여받는 셈이다.
특히 기습을 중심으로 하는 ‘몰래 멀티’나 ‘드롭 공격’, ‘숨겨진 병력 이동’ 같은 고급 전략들은 ‘black sheep wall’ 앞에선 무력화된다.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 우크라이나군도 초창기 이같은 현실판 치트키를 통해 러시아군의 이동 경로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고속기동 드론 및 유도무기로 반격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유사한 전략적 역량 확보에 나선 셈이다. 기존의 엔진, 방공, 자주포 등 지상 기반 무기체계를 넘어, 우주 수송 수단까지 직접 확보함으로써 ‘정보-통신-화력’을 수직 통합하는 미래 전쟁 대응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한화는 향후 우주 발사체 기술을 통해 자사의 위성 사업과의 시너지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이미 한화시스템은 저궤도 통신위성 사업에 진출했으며, 미국 위성기업 ‘아큐아이어’에도 투자한 바 있다.
여기에 수송체계가 더해지면, 독자적인 국방용 스타링크를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 여건이 조성된다.
반면 한화는 한화는 표면적으로는 이번 기술 이전의 의미를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에 두고 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항우연이 오랜 기간 쌓아온 기술력과 끊임없는 개발 노력에 감사드린다”며 “이번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누리호의 기술 및 비용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상업 발사서비스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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