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N뉴스 = 홍세기 기자]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가 삼성생명의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국내 금융권의 일탈회계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내 금융당국을 넘어 국제 회계기구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사안의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IFRS IC는 딜로이트, EY, KPMG, PwC 등 글로벌 4대 회계법인과 주요국 증권감독기구를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 약 130여 개국이 사용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해석하고 지침을 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IFRS IC는 이르면 11월 말 '의제 결정(Agenda Decision)' 문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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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본사 전경 [사진=삼성생명]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탈회계 관련 부분은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내부 조율이 된 상태"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IFRS IC의 해석과 무관하게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통해 조속히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 문제의 원인과 배경
논란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1980~1990년대 유배당보험 159만건을 138만명에게 판매해 받은 보험료로 삼성전자 지분 8.51%(약 30조원)를 매입한 후, 계약자에게 돌아갈 배당금을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으로 분류한 것이다.
2023년 도입된 IFRS17 원칙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매각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보험부채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2022년 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며 금감원으로부터 IAS 1의 '일탈(Departure)' 조항에 근거한 예외적 회계 처리를 승인받았다.
문제는 올해 2월 삼성전자가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금융산업법상 한도(10%)를 넘어서자 약 2400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했는데, 이로 인해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는 일탈 조항 적용의 전제조건이 흔들리게 됐다.
◆ 국제 무대로 번진 일탈회계
한국회계기준원이 지난 9월 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및 IFRS IC 주요 인사를 만나 '일탈 회계' 문제를 논의하고,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회계처리가 '오류'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 계기가 됐다.
회계기준원은 삼성생명의 회계 처리가 IFRS17의 근본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한다. 계약자지분조정은 부채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IFRS17이 요구하는 단일 보험부채 평가 구조를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IFRS IC의 '의제 결정(Agenda Decision)'은 공식 해석서는 아니지만 사실상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으로 통한다. 전 세계 130여개국이 사용하는 국제회계기준을 해석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만큼, IFRS IC가 11월 말 발표 예정인 의제 결정은 국내 금융당국의 입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FRS IC는 현재 글로벌 4대 회계법인(딜로이트, EY, KPMG, PwC)과 주요국 증권감독기구를 대상으로 "IAS 1의 '일탈' 조항 적용 시 공정한 표시 및 개념체계 준수를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국내 회계 논란이 국제 무대로 확산되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회계 투명성과 신뢰성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 금감원의 독자 행보 가능성도
금감원은 IFRS IC의 해석과 무관하게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통해 조속히 결론을 낸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질의회신 연석회의는 금감원과 회계기준원, 민간전문가 총 13명으로 구성된 회계처리 심의기구로, 중요한 회계 이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금감원이 최근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법 적용 문제와 관련해 질의회신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에 유리한 결론을 내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금융당국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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