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기업 기술탈취 의혹, 이분법의 함정

이동훈 기자 / 기사승인 : 2025-09-24 13: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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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소 전 실명 보도는 최소한 검증 필요
선악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균형·책임 지켜야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최근 대기업의 한 계열사가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 탈취 의혹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방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해당 계열사 사무실과 협력업체를 수색하고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등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상황이다. 그룹 측 관계자 소환 조사도 예고됐다. 경찰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만큼 사실관계를 신중히 확인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온라인 여론은 곧장 “역시 대기업은 착취자다”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대기업=가해자, 중소기업=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다. 그러나 기술 분쟁은 간단치 않고 복잡하다. 범용 기술을 두고도 ‘탈취’ 프레임이 씌워지는 사례가 많고, 판례에서도 대기업이 억울하게 몰린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이 ‘약자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기술 탈취 의혹은 그 단어 자체가 무겁다. 기업명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순간 주가, 협력 관계, 사회적 신뢰는 급격히 흔들린다. 설령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 나더라도 ‘기술을 빼앗은 회사’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실명 보도는 반드시 ‘최소한의 검증장치’가 작동한 이후로 미뤄야 한다.

경찰 고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절차이며, 그 자체로 범죄 사실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경찰은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부 언론은 균형적 시각을 보였지만, 다른 일부는 “경찰 수사 중”이라는 표현만으로 마치 유죄가 확인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보도를 한다. 이는 초기부터 불법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힐 우려가 있다.

기술 탈취 의혹은 고소·수사 착수 등 명확한 사실만을 근거로 보도해야 한다. 또한 그 근거와 수사 기관의 공식 입장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며, 여론의 오해와 섣부른 낙인찍기를 피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피해자 측 주장뿐 아니라 피고 측 반론, 그리고 제3자(공인기관 등) 검증 문제까지 객관적으로 담을 필요가 있다. 현재 대기업 측은 제3자 검증기관을 통한 절차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충분히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 매체도 적지 않다.

실제 기술 분쟁은 법적, 기술적 기준이 충족되는지 세밀하게 따져야 하며, 기술의 독창성·비밀관리 여부·경제적 가치 등 전문적 요소를 함께 설명함으로써 독자가 단순 서사에 휘둘리지 않고 쟁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법적 판단 이전 단계에서 양측 모두의 억울함과 입증 책임, 분쟁의 복잡성을 꾸준히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사회적 편견에 휩쓸린 성급한 결론이나 기업 낙인을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검찰 기소 이전까지는 ‘A사’와 같은 이니셜 처리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기업을 두둔하기 위함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단계에서 사회적 낙인이 확정되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속도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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