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N뉴스 = 편집국] 올해 들어 ‘출발선’이라는 단어가 청년 문제를 논의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가계금융복지조사 분석에 따르면 30세 미만 가구의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 간 평균 총자산 격차는 약 34배에 이르며, 부동산 등 실물자산 격차는 200배를 넘어선다. 청년 세대 내부에서도 자산 격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 관련 분석과 보도가 쌓인 지금, 청년들의 자산 격차가 크다는 진단 자체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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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욱빈 한성대학교 교수. [사진=HBN뉴스] |
중요한 것은 격차가 크다는 사실보다 그 격차가 어떤 방식으로 청년의 삶을 갈라놓고, 다시 다음 기회의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이다.
경제학에서는 자산과 소득을 구분한다. 소득은 일정 기간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지만, 자산은 과거부터 축적된 경제적 기반이다. 자산은 단순히 보유한 재산에 그치지 않는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며,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청년은 취업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청년은 원하는 진로보다 안정적인 소득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자산의 차이는 소비 수준을 넘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차이로 확대되고, 그 기회의 차이는 다시 자산 격차를 고착시키는 구조로 작동한다.
주거 문제는 이러한 구조의 핵심에 있다. 소득이 같더라도 주거비 지출이 많은 청년은 저축과 투자에 활용할 자금이 줄어든다. 반대로 부모의 지원으로 주거비 부담을 덜 수 있다면 자산 형성에 유리한 출발점을 확보한다. 여기에 자산가격 상승이 더해지면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미 자산을 보유한 가구는 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리지만, 이제 막 자산을 형성하려는 청년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아진다. 근로소득을 축적하는 속도가 자산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는 것만으로 격차를 좁히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물론 부모가 자녀를 지원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가족이 축적한 자산을 자녀의 미래에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산을 형성하려는 개인의 노력과 경제적 유인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가족의 지원이 자연스럽다는 사실과 사회가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은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청년 자산 격차가 개인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기업과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면 개인의 역량과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육과 경험을 축적할 기회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면 기업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능력이 있어도 기회가 부족해 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청년이 생기고, 기업은 제한된 후보군 안에서 인재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기회의 불평등은 노동시장의 인재 배분을 왜곡하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청년 자산 격차는 분배의 문제인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업의 채용과 인재육성 방식에도 질문을 던진다. 기업이 직전 경력과 자격증, 각종 대외활동 경험만을 중심으로 청년을 평가한다면 경제적 여건에 따라 경험을 축적할 기회가 달랐던 현실이 그대로 선발 과정에 반영될 수 있다. 물론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검증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 역량이 어떤 환경에서 형성됐는지,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공정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정책뿐 아니라 기업의 인재 선발과 육성 방식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우선 청년정책의 목표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동안 청년정책은 지원 규모와 수혜자 수를 주요 성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책의 목적이 출발선의 격차를 완화하는 데 있다면 성공 여부도 얼마나 많은 청년을 지원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기회의 격차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일시적인 현금 지원은 당장의 어려움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산 격차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양질의 일자리, 주거 안정, 금융 접근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청년이 근로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제도일수록 정작 지원이 절실한 청년은 납입 여력이 부족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교육과 취업 과정에서도 경제적 배경에 따른 기회 차이를 줄여야 한다. 직무교육, 현장실습, 자격 취득, 취업 준비에 필요한 비용이 청년의 도전을 제한하지 않도록 지원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 역시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청년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경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책평가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지원 금액과 수혜자 수만으로 정책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원받은 청년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얼마나 완화됐는지, 저축과 순자산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경제적 자립 수준은 실제로 개선됐는지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같은 정책이라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에게 미치는 효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원을 받는 청년에게 지원금은 자산 축적을 가속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독립적으로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청년에게는 당장의 지출을 충당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필요한 지원일 수 있으나, 그 결과가 자산 격차 완화로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정책효과를 구분해 분석하고, 유사한 조건의 비교집단과 장기적인 추적조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책 시행 전후의 수치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의 효과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산 격차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만큼 정책의 성과 역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 정책의 목표가 지원의 확대가 아니라 출발선의 격차 완화라면 평가의 잣대도 그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최근 국민통합위원회가 청년 세대의 자산 격차 완화와 고용 회복, 부동산 및 주거 안정 문제를 주요 갈등 의제로 다루고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의미가 있다. 청년 자산 격차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토론과 문제 제기만으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논의된 대안이 실제 정책 설계로 이어지고, 그 효과가 객관적으로 검증되는가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가 출발선의 차이에 지나치게 좌우된다면 청년들은 공정한 경쟁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 경쟁의 결과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경쟁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불평등하다면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려면 그 노력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공정한 사회란 모든 사람이 같은 자산을 갖는 사회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성과를 얻되, 부모의 자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미래의 가능성까지 제한되지 않는 사회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지원금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회복될 때 청년은 도전하고, 기업은 더 넓은 인재풀에서 인재를 확보하며, 사회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출발선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적 배경이 능력과 노력의 평가 기준까지 대신해서는 안 된다.
<글쓴이 임욱빈 교수>
- 현 한성대학교 비즈니스컨설팅학과 교수(학과장), ESG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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