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일곱 번째 ‘삶과 죽음이 하나이더라’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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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정사. |
바야흐로 낙엽 내음이 짙어지고, 찬 바람이 코 끝을 스치는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어딘가에서 불을 지피면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구수한 누룽지에 보글보글 된장 찌게가 나올 법한 정겨운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아 절로 고향 생각이 나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이런 평화로운 날들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살아있음이 또 어떤 의미인지 참으로 생사의 굴레에 얽힌 중생심으로는 가늠할 수 없겠지만 이 나이가 되고 돌이켜 보면 주마등처럼 삶의 발자취와 죽음의 이야기가 스쳐가기 마련이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면서 매일 총탄이 머리 위에서 날아 다니지 않는 것만도 감사해야할 하루살이인 것을 6.25를 겪어 본 적 없는 세대들에게도 애국심과 안보의식을 한층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건군 76주년 국국의 날 시가행진을 통해 세계 수준의 대한민국 국방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이 곳 산사에서도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가 창공을 가르는 위엄을 목도할 수 있어 뿌듯했다.
초고위력 미사일 '현무-5', 미 공군의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랜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잠수함 킬러' P-8A 해상초계기, 대테러 작전용 다족보행로봇, 자주도하장비 '수룡' 등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서 처음 등장해 눈길을 끈 최신식 무기들을 보면서 연일 대남 쓰레기 풍선을 날려보내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민국 국군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응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최초의 단일국가 고조선이 건국된 날을 기념하여 하늘이 열린다고 하는 개천절에는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즉 "세상의 모든 만물을 널리 이롭게 하는 참된 사람이 되라!"는 단군의 건국이념을 되새기게 되더라.
이렇게 10월은 의미 깊은 날들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임과 동시에 과학적인 문자로 글이 없는 나라에 한글을 보급하고 있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도 다가온다.
이처럼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10월을 맞아 생(生)과 사(死)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한 영화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젊은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인가 싶어 고민하다 신촌 기차역 인근 극장을 찾았다. 출가 전 친구들과 삼삼오오 재잘거리며 거닐던 이대 앞 거리도 많이 변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작은 스크린의 소극장 느낌이라 영화에 더 몰입하기 좋았다. 요즘은 아침에 새로 습득한 지식이 저녁이면 바뀌는 시대다 보니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편안함에 잠시 젊은 날을 회상하는 사이에 영화가 시작 되었다.
"유령 신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리와 초컬릿 공장", "가위손", "배트맨" 등의 영화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근한 팀 버튼(Tim Burton)감독의 영화라기에 한 번 보자 하고 갔는데, 영화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전개가 인상 깊었다.
영화의 제목은 "비틀쥬스 비틀쥬스"다. 유령을 보고, 유령과 대화하는 영매 "리디아"(위노나 라이더)와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고 믿음도 가지 않는 십대 딸 "아스트리드"의 이야기이다.
남들과는 다른 날들을 사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에게 할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흩어졌던 가족을 고향으로 모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십대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인지라 방황하는 딸 "아스트리드"는 죽은 자가 계획해 놓은 함정에 빠져 산 자는 발을 들일 수 없는 저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딸을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엄마 "리디아"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저승에 있는 "비틀쥬스"의 이름을 세 번 불러 그의 도움으로 저승에 입성한 "리디아"가 죽은 전 남편의 도움으로 무사히 딸을 이승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나는 불교적인 윤회(輪廻)와 환생(還生) 그리고 중유(中有)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중유(中有)란 중음(中陰)과 같은 개념이다. 불교에서 사유(四有)의 하나로 중생이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 현세(現世)와 명도(冥途)의 중간에 있는 어두운 세계를 뜻한다. 사람이 죽은 뒤 이 기간이 지나야 다음의 생(生)을 받는다고 한다. 영화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기차역이 이런 공간과 시간을 의미하겠구나 하여 서양에서도 사후 세계를 그리는 영화가 이렇게 잘 만들어진다는 것에 감탄했다.
극락(極樂)과 지옥(地獄)의 경계 그리고 그 사후(死後) 세계를 관장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을 영화는 1시간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내포하여 잘 묘사해냈다. 그리고 어렵지 않은 용어로 삶과 죽음을 표현해낸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었다.
"호러 코미디"라는 장르로 구분 짓는 게 맞는 표현인지는 몰라도, 오싹하고 소름돋는 영화, 괴기스러운 장면을 떠올리기에는 어딘가 엉성한 듯한 팀버튼 특유의 장치들이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와 재미를 더한다. 36년만에 나온 후속작 "비틀쥬스 비틀쥬스" 또한 예외없이 사막에서 "모래벌레"라는 헝겊인형 괴물이 튀어 나오는가 하면, "사후세계 매니저"라는 새로운 용어도 접할 수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편도 티켓으로 "소울 체인지 트레인"에 탑승, 이승과 저승의 경계 중유에서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영혼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각자의 방식으로 몸부림치듯 춤추는 장면에서는 아직 생(生)을 향한 미련이 남은 영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 했다.
영화 중간에 "빙의(憑依) 전문가"라는 전단지도 등장하고, 다락방의 문을 통해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는 설정도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죽은 아버지가 딸과 아내를 지켜보고 있다는 표현, 죄를 지은 영혼이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장면, 죽은 자에게는 생전의 재산도 권력도 무의미하고, 영혼의 이름을 3번 부르면 영혼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도 동서양이 같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에 포함되는 영역인 듯 하다.
다분히 동양적인 색채를 서양의 시각으로 풀어낸 영화 한 편이 대중에게 주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경전에 이르기를 말법시대에는 춤과 노래로서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는데,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의 스승과도 같은 경인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의 말씀 하나하나가 감명 깊은 영화, 드라마, 춤과 노래로서 제작되어 단박에 깨우침을 주고, 중생의 복전(福田)이 될 수 있도록 함은 얼마나 큰 공덕이랴 생각해본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여인이 있었다. 예지몽으로 중생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보는가 하면, 매 순간 영화 속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리디아"처럼 영혼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혼들을 만나기도 하는 여인은 평범한 이들과는 사뭇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명절이 되면 돌아가신 분들이 먼저 와 기다리는가 하면, 죽음의 문턱을 차마 내딛지 못하는 영가가 미리 그 여인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오래 전 이승을 떠났어야 마땅한 데 삼혼칠백(三魂七魄)은 자유로이 또 나타나 시달림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는 별개의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닐진데 중유(中有) 또한 어찌보면 생사의 갈림길 어디쯤에 잠시 잠깐 드나들기도 하는 걸 실감한다는 그 여인은 엊그제 언제나처럼 지인의 예지몽을 꾸었다.
평소 입던 옷을 벗고 새하얀 옷을 입은 80대 할머니가 연꽃 사이로 홀연히 들어가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꿈인 걸 알지만 할머니의 손을 잡으려 하자 이 곳은 함께는 못 간다고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잠시 잠을 잤는가 싶었는데 깨어나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부고가 들어와 있었단다. 하여 장례식장으로 함께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난 해 뉴욕의 유명한 카네기홀에서 큰 감동을 선물했던 "미라클보이스 앙상블"은 발달장애를 성악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장르로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그 아름다운 음악성을 알려 수많은 찬사를 받았었다.
이토록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중증발달장애 음악인을 발굴하고 지도하여 음악을 통한 치유가 가능하게 한 ‘아르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윤혁진 음악감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훌륭히 키워내신 자랑스러운 어머니 고 이연숙 님의 숭고한 희생과 남다른 아들을 향한 모정이 있으셨기에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을 선보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음악을 통해 소외받는 계층, 전쟁의 포화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이들을 어루만져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공연에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난다.
비록 육신은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 수 없지만, 애지중지 평생을 함께 해온 효성스러운 아들이 있어 마지막 가시는 길은 꽃밭을 따라 천국에 이르시길 축원했다.
어버이 나이 높아 일백 살이 되었어도 여든 된 아들 딸을 쉼 없이 걱정하네 이와 같은 크신 사랑 어느 때에 끊이실까 수명이나 다하시면 그때에나 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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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
<부모은중경 중에서>
"비록 이승에서의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다했지만, 더 크고 소중한 은혜로 내 안에 깊은 인연을 만드신 어머니.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도 백발이 성성 늙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 경전의 말씀처럼 이제야 편안하게 시름을 접고 쉬시는가. 부디 못난 자식이 저질렀던 불효의 상흔들을 모두 지우고 극락 왕생하시기를 오늘도 기도드린다"
출가자인 나조차도 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담담할 수 없었다. 세상 어느 죽음이 쉽게 잊혀질까 싶지만 부모자식 특히 태중에서부터 이어진 어머니와의 관계는 더한 것 같다. 내일이 먼저 오게될 지 내생(來生)이 먼저 올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더라.
오탁악세(五濁惡世) 말법시대를 근근히 살아가는 중생에게 지금 곁에 소중한 이가 있다하여 내일 나와 함께 할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지금 당장 소중한 이에게 감사하고, 마음을 표현함이 마땅할 일이다. 그리고 육신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나도 조상은 늘 그 자손 곁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하여 수미산을 뼈가 닳도록 업고 다녀도 다 갚을 수 없다는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살아계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 향을 피우는 공덕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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