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150조 원 국민성장펀드, '藥' VS. '毒'

김성준 시사평론가 / 기사승인 : 2025-12-18 12: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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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필요성’과 ‘시장 원칙’이 심각하게 충돌
설비투자 위한 정책 대출(Loan) 형태로 혼합 운용

[HBN뉴스 = 김성준 시사평론가]  ‘속도’앞세운 정책 드라이브, 금융권‘책임 공백’도덕적 해이 논란 증폭, 산업계 주도 의사결정 속 은행 배제,‘부실 책임은 누가 지나’구조적 모순

 

정부가 경기 침체 극복과 미래 핵심 산업 육성을 위해 총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출범을 공식화했지만, 조성 경위와 실행 방안을 둘러싸고 ‘정책적 필요성’과 ‘시장 원칙’이 심각하게 충돌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민간 금융기관의 자본을 활용하는 과정에서‘책임의 공백’이 발생, 자칫 대규모 금융 리스크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속도와 규모’앞세운 국민성장펀드의 탄생

 

국민성장펀드는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AI,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전략 산업에 막대한 마중물 투자를 신속하게 집행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펀드의 핵심은 총 150조 원이라는 압도적인 규모와‘속도 중심’의 운용 기조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적인 재정 투입 대신 시중 은행 및 연기금 등 민간 금융기관의 자본을 활용하는 정책 금융 방식을 택했다. 자금은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Equity)와 설비투자를 위한 정책 대출(Loan) 형태로 혼합 운용된다.

 

‘책임 공백’과 ‘관치 금융’ 논란

 

펀드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책임과 권한의 분리’를 초래하는 거버넌스 구조다. 펀드 자금의 최대 출자 주체인 시중 은행 등 금융권은 투자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산업계 주도 거버넌스)에서 은행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배제된다. 이는 금융 시장의 기본 원칙인‘돈을 낸 자가 결정한다’는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만약 투자가 실패했을 경우, 결정을 내린 산업계 위원회가 아닌 자금을 댄 금융기관이 일차적으로 손실을 감당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는 ‘책임 없는 결정’을 낳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유발하고,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한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다.

 

또한 은행들이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자본을 투입하도록 사실상 압박받는 형태이므로,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치 금융(官治金融) 논란도 피할 수 없다.

 

◆ ‘투자인가 재정인가’ 경계 모호, 재정 투명성 저하 우려

 

펀드 자금 중 AI(30조 원)나 저금리 대출(50조 원) 등 특정 분야에 목적 지정 형태로 할당되는 것은 순수한 시장 투자(수익성 우선)라기보다는 준(準) 재정사업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대규모 정책 사업을 국가 재정이 아닌 민간 금융기관의 자본을 통해 우회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재정 부담은 줄일 수 있으나 국가 재정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정책적 필요성 때문에 시장 논리로는 수익성이 낮은 리스크 사업에도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커져 15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우려도 제기된다.

 

◆ ‘속도’ 중심 심사 구조, 잠재적 부실 위험 증대

 

정부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심사과정을 간소화하고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속도’를 강조하는 만큼, 리스크 검증 약화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신중한 사업성 검토 없이 집행될 경우, 시장의 검증을 통과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높은 기업이나 잠재적 부실기업이 정책적 배려를 받아 자금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선택적 부실(Adverse Selection) 위험을 증가시켜 펀드의 손실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투자가 실패하여 부실이 발생했을 때, 손실 규모가 클 경우 결국 공적 자금(국민 세금)이 투입되어 이를 수습하는 사회적 비용과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근본적인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150조 원 국민성장펀드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잠재적인‘약(藥)’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규모 금융 리스크를 초래할‘독(毒)’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국민성장 펀드의 성패는‘속도’를 무기로 한 정책 집행의 효율성이 ‘책임 공백’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금융 시장의 건전성을 보호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손실 발생 시 금융권의 책임 부담을 경감하고, 의사결정 기구에 금융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 균형 잡힌 리스크 통제 시스템을 시급히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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