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보다 시급한 건 감독, 개혁 본질은'통제'
[HBN뉴스 = 이동훈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둘러싼 전관(퇴직자 재취업) 특혜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면서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관한 근본적 불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퇴직자들이 재직 중인 업체들이 다수의 LH 사업을 독점적으로 수주한 정황이 드러났고,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둘러싼 비위 사건도 잇따르며 관리·감독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실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 출신 인사들이 재직 중인 91개 업체가 지난해 10월 이후 LH로부터 8000억 원이 넘는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업체들은 총 355건의 사업을 따냈으며, 이들 회사에 근무 중인 LH 퇴직자는 483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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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진=연합뉴스] |
이들 중 일부는 과거 입찰 담합, 철근 누락, 아파트 붕괴 사고 등으로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LH 사업을 수주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A건축사사무소에는 LH 출신 직원이 26명 근무하며, 이 가운데 부사장·전무 등 임원급만 10명이 넘는다. 이 회사는 인천 검단 붕괴 사고 당시 감리를 맡아 지자체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법원 가처분으로 입찰 제한을 피하고 이후에도 수주를 이어왔다.
LH는 철근 누락 사태 이후 퇴직자 등록 시스템을 도입해 전관 업체의 입찰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현행 기준상 퇴직 후 3년이 지난 2급 이하 직원은 전관으로 간주되지 않아 사실상 제재가 불가능하다.
올해 4월에는 A업체를 포함한 20개 건축사사무소가 LH 및 조달청 발주 공공건설감리 입찰에서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또한 국회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김종양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LH의 매입임대주택 사업에서 총 24건의 비위가 적발됐다. 내용은 직원 가족 주택 매입, 금품 및 향응 수수, 외부위원 선임 개입 등으로 다양했다. 그러나 징계는 경징계 수준에 그치거나 형평성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데도 국토교통부는 제대로 된 감사나 개선 권고를 하지 않아 감독 기능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LH 내부 시스템만으로는 전관 비리를 막기 어렵다”며 “퇴직자와 재취업 업체, 입찰 구조 간의 고리를 끊기 위해 외부 감시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 인식 속에 LH의 기능 재정립과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개혁 방안을 하반기 중 마련하기로 해 주목된다.
표면적으로는 ‘공공주택 직접 공급’ 등 사업 구조 개편이 핵심이지만, 실제 배경에는 전관 비리·감독 공백에 대한 구조적 개혁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독립적인 감사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LH 내부 통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외부 감사와 검증 체계를 상시화해 그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찰 과정에서도 퇴직자의 재취업 여부를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해법은 투명성에 있다”며 “LH의 입찰 정보와 퇴직자 재취업 현황을 국민이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전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자유롭게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비로소 공기업의 공공성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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