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N뉴스 = 이동훈 기자] 전세금반환소송은 여전히 세입자에게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된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소송은 너무 오래 걸려서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원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 인식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실제 전세금반환소송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4개월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소송임에도 ‘길다’는 인식 때문에 시작조차 못 하는 세입자가 많다”며 “막상 법원에 소장을 내고 나면, 평균 4개월 안팎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되는 사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세금반환소송, 숫자로 보면 ‘4개월대’에 그친다. 대법원이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민사본안 사건의 1심 처리 기간은 통상 4개월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체 민사본안 평균 처리기간과 비교해도 특별히 길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사실관계가 단순한 사건은 더 빨리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실무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전세금반환소송을 하면 1~2년은 각오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시간이 길어지는 구간은 정작 ‘소송 전’인 경우가 많다. 전세계약 만기 2개월 전까지 해지 의사표시를 해야 효력이 생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시점을 놓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집주인이 “곧 돈 마련된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 세입자도 분쟁을 키우기 부담스러워 몇 달씩 지켜보는 패턴이 반복된다. 엄 변호사는 “연락이 더디고 회신이 자꾸 미뤄지는 시점이 사실상 전세 분쟁의 시작인데, 이때 대응이 늦어지면서 체감 기간이 1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길게 느끼는 전세 소송’의 실체는 소송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앞뒤로 붙어 있는 대기 시간에 가깝다. 집주인 연락이 끊겼음에도 내용증명 발송과 소장 제출을 미루는 기간, 1심 판결이 나온 뒤에도 강제집행을 주저하며 버티는 기간이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시간의 공백’으로 남는다. 이 공백이 길어질수록 세입자는 “정말 몇 년이 걸린 싸움이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절차를 미리 준비하면 4개월도 더 짧아질 수 있다는 것이 실무가 지적하는 대목이다. 전세계약서, 보증금 입금 내역, 전세계약 해지 통보가 담긴 내용증명,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우선변제권 요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갖춰져 있으면 재판부가 쟁점을 정리하기 수월해진다. 임대인이 단순히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뿐 별도의 법적 다툼거리가 없다면, 조정이나 화해권고결정 등으로 조기에 종결되는 사건도 적지 않다.
반대로 차임 연체, 수리비 공제, 원상복구 비용 같은 쟁점이 뒤섞이면 기간이 늘어난다. 임대인이 “도배와 장판 교체비를 빼야 한다”, “파손된 부분을 고쳐야 해서 전액을 줄 수 없다”고 맞서면 법원으로서도 감정을 거쳐야 하거나, 여러 차례 변론기일을 열어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증거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억울하다는 입장만 제출하면, 재판부도 판단을 미루게 돼 시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관건은 ‘길어서 못 한다’가 아니라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계약 만기 2개월 전 해지 통보, 내용증명 발송, 소장 접수, 판결 선고, 강제집행 신청까지의 흐름을 한 번에 설계해 두면 전체 회수 타임라인을 예측할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청구 취지만 명확히 정리해 소장을 내면 4~6개월 안에 1심 결론을 받는 사건이 많다”며 “정작 길게 끄는 것은 소송이 아니라, ‘혹시나 돈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세입자가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지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해지 의사표시 시점이다. 임대차계약 만료 2개월 전까지 집주인에게 계약을 끝내겠다는 의사가 도달해야 전세계약이 예정대로 종료된다. 통화나 메신저만으로는 나중에 다툼이 생길 수 있어, 내용증명 우편을 활용해 날짜와 내용을 남겨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조언이다.
둘째는 집주인 반응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다. 집주인이 재계약을 종용하거나 반환 시점을 계속 미루는 경우, 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가능성, 소송 제기 시점 등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특히 연락이 끊기는 ‘잠적 신호’가 보이면 이미 상황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는 더 이상 구두 약속에 기대지 말고, 법적 절차를 전제로 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실무는 조언한다.
셋째는 판결 이후 강제집행까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보는 시각이다. 전세금반환소송을 단순히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로만 보면 판결문을 받아든 뒤에야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그러나 애초에 부동산 강제경매, 임대인의 다른 재산에 대한 채권압류·추심 등 집행 수단까지念頭에 두고 전략을 짜면, 1심 판결 선고 직후 곧바로 회수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엄 변호사는 “판결문만 받아놓고 집행에 나서지 않으면 4개월 소송이 결국 2년 싸움이 되기도 한다”며 “처음부터 소장 단계에서 집행까지 한 번에 그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세금 반환 분쟁이 일상화된 지금, 세입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시간이 많이 드는 소송’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평균 4개월대라는 숫자는 소송이 생각만큼 길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그 시간조차 시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엄정숙 변호사는 “전세금반환소송은 길어서가 아니라, 늦게 시작해서 더 길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금 내 계약과 해지 통보, 증거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것에서 전세금 회수 전략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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