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규제 강화까지 겹쳐 리스크 확대
[HBN뉴스 = 이동훈 기자] 올해 하반기 대기업 채용 계획이 역대급 한파에 직면했다. 매출 상위 500대 기업 10곳 중 6곳이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거나 미정인 상태로, 지난해보다 한층 얼어붙은 고용 환경이 현실화되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과 강화되는 노동 규제가 맞물리며 신규 인력 충원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500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8%가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거나 미정인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57.5%)보다 5.3%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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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들이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채용 계획을 밝힌 기업 중에서도 “작년보다 채용 규모를 줄이겠다”는 응답이 37.8%에 달했다. 업종별로는 건설·토목(83.3%), 식료품(70.0%), 철강·금속(69.2%), 석유화학(68.7%) 등 전통 제조업에서 대규모 신규 채용을 망설이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대기업 채용 위축의 배경으로 대미(對美) 무역 불확실성이 거론된다. 미국의 산업 보조금 정책, 공급망 재편 압박, 중국 제재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국내 기업들의 투자 전략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보조금 정책은 해외 현지 투자 계획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북미 생산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중국 내 생산능력 확대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적용하고 있어,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인력 채용보다 기존 사업 효율화와 재무 안정성 확보에 무게를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조사 응답 기업의 56.2%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및 수익성 악화 대응을 위한 경영 긴축”을 채용 축소 이유로 꼽았다.
대기업 인사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으로 내년 3월 10일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의 개정안)이 거론된다.
해당 법안은 쟁의 행위와 관련한 사용자 측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일부 기업들은 집단행동 리스크 확대와 인건비 부담 증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전통 주력 산업은 활력을 잃고 신산업 분야 기업들도 고용을 확대할 만큼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노조법·상법 개정으로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는 각종 규제 완화와 투자 지원 등을 통해 기업들의 고용 여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도 “노란봉투법이 내년 3월 시행되면, 대기업 뿐 아니라 협력사 전반에서 인력 운용 전략을 재조정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며 “기존 인력 유지와 신규 채용 사이에서 기업들의 우선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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