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성과급은 돈으로 주지만, 받는 것은 '신뢰'다

편집국 / 기사승인 : 2026-07-22 08: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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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N뉴스 = 편집국] 성과급 시즌이 되면 조직은 가장 민감한 시험대에 오른다. 성과급은 한 해의 경영성과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제도이지만, 동시에 조직이 얼마나 공정한 평가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뢰의 시험지’이기도 하다. 

 

  임욱빈 한성대학교 교수. [사진=HBN뉴스]

 

올해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서도 확인했듯이 성과급을 둘러싼 논쟁은 매년 반복된다. 표면적으로는 지급 규모가 쟁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성과로 인정받았는가.’ 결국 성과급 갈등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평가에 대한 신뢰다.

 

성과급은 말 그대로 성과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조직 내부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성과급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성과평가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갈등의 상당수가 성과급 규모 때문이 아니라 평가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같은 금액을 받아도 어떤 조직에서는 정당한 보상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조직에서는 불공정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결국 성과급의 가치는 액수가 아니라 평가에 대한 신뢰가 결정한다.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 조직들이 ‘성과관리(Performance Management)’와 ‘성과측정(Performance Measurement)’을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과를 수치로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매출, 영업이익, 생산량, 원가절감액, 고객만족도 등 측정 가능한 지표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성과관리는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전략과 구성원의 행동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창출된 가치를 평가하며, 다시 미래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관리 과정이다. 좋은 평가는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설계하는 과정이다.

 

성과평가에는 오래된 역설이 있다. 측정되는 것은 관리되지만, 중요한 것이 항상 측정되는 것은 아니다. 숫자는 객관성을 높여주지만, 숫자만으로 조직의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측정이 쉬운 지표에만 조직의 관심이 집중되면 본래의 목적보다 지표를 관리하는 일이 우선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성과평가에서 흔히 말하는 '지표의 역설'이다. 결국 좋은 평가체계란 측정 가능한 성과뿐 아니라 측정하기 어려운 기여와 미래가치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의 사각지대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 기술을 준비하는 연구개발 부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최고의 성과인 안전관리 부서, 조직의 리스크를 예방하는 준법경영과 ESG 부서의 성과는 재무제표에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경기 호황이나 환율 변동 같은 외부 환경 덕분에 실적이 개선된 조직은 실제 노력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동일한 성과급이라도 누군가는 정당한 보상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운이 좋은 사람에게 돌아간 보너스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과평가는 숫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여를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복합적이다. 실제 경영평가 현장에서는 ‘평가를 잘 받는 조직’과 ‘성과를 잘 내는 조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적지 않게 접한다. 일부 기관은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기보다 평가지표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도 한다. 성과관리의 목적이 조직의 발전이 아니라 평가등급 유지로 바뀌는 순간, 평가는 조직을 성장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조직을 경직시키는 규제가 된다. 

 

또한 정부의 예산지침과 보수체계의 제약 속에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고도 조직 전체의 형평성을 이유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역시 존재한다. 공공성은 중요하지만,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기여를 모두 평균화하는 것은 또 다른 불공정이 될 수 있다.

 

최근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성과급 제도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논의의 대부분은 지급률이나 재원 규모에 집중된다. 성과평가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으로 손봐야 할 대상은 지급액이 아니라 평가모형의 품질이다.

 

첫째, 결과뿐 아니라 과정과 기여도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는 협업보다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장기 혁신보다 단기 성과에만 몰입하게 만든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조직은 성공뿐 아니라 도전과 학습의 과정까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개인성과와 조직성과, 그리고 환경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평가가 필요하다. 개인이 뛰어난 성과를 냈더라도 조직 전체가 실패했다면 지속가능한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조직성과만 강조하면 개인의 헌신은 평가받지 못한다. 여기에 시장 상황이나 정책 변화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까지 함께 고려해야 진정한 공정성이 확보된다.

 

셋째, 평가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높여야 한다. 구성원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높은 점수가 아니다. 자신이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받고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이다. 결과의 공정성은 과정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평가는 사람을 줄 세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을 함께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성과평가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반복 업무는 AI가 수행하고, 사람은 기획·창의·협업·문제해결과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평가체계는 여전히 업무량이나 처리 건수처럼 측정하기 쉬운 지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AI는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폭발적으로 늘려주고 있지만,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판단, 윤리, 협업, 배려와 같은 가치는 오히려 평가에서 소외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일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했는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AI는 평가를 지원할 수는 있어도 평가의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데이터는 판단을 돕지만, 공정성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성과평가는 단순한 인사제도가 아니라 조직문화의 거울이며, 동시에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전략적 인프라다. 공정한 평가는 구성원의 도전과 혁신을 이끌고, 혁신은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신뢰를 잃은 평가체계는 구성원의 동기를 약화시키고 조직을 단기 성과와 형식주의에 머물게 만든다. 결국 평가의 수준이 조직의 수준을 결정한다.

 

오늘날 글로벌 경쟁은 기술과 자본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성장시키며, 어떻게 보상하는지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이는 공공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성과급 논란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과급을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좋은 성과급 제도는 더 많은 돈을 지급하는 제도가 아니라, 더 많은 구성원이 결과를 신뢰하는 제도다. 평가를 신뢰하는 조직은 혁신을 만들고, 혁신하는 조직은 국가 경쟁력을 만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두꺼운 지갑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가치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더 정교하고 공정한 평가의 눈이다.

 

<글쓴이 임욱빈 교수> 


- 현 한성대학교 비즈니스컨설팅학과 교수(학과장), ESG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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