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노이슬 기자] 소녀는 외친다. 나를 구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말은 제발 나를 구해달라는 소녀의 SOS다. 예쁜 것만 보고 즐거워야 할 나이인 열 두살인데 말이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열두 살 소녀 선유(조서연)는 엄마(양소민)와 도망치 듯 낯선 곳으로 이사왔다. 아빠는 부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먼저 차가운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엄마와 단 둘만 남겨진 선유는 새로운 곳에서 정국(최로운)을 만난다.
선유는 무엇이든 다 잘하지만 차분하고 말이 없다. 정국은 반에서 유명 '핵인싸'로 천진난만하다. 쉬는 시간에는 노래와 춤을 보이는 영락없는 그 나이 또래다. 그런 정국은 전학 온 첫날부터 어쩐지 선유에게 마음이 간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첫 사랑을 앓는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은 멀어지기만 하려는 소녀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갓 전학 온 소녀를 위해 모두가 '단체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서 어울리도록 하고, 혼자 길을 떠나는 소녀와 동행한다. 둘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둘만의 추억을 쌓는다.
그즈음 마음을 연 소녀는 소년에게 묻는다. 너는 '필요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소년은 자신은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필요한 사람'이라고 한다.
소녀는 그로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동안 거짓말로 자신을 위로한 엄마의 속 사정을 다 알았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선유는 스스로가 세상에 필요없는 존재란 생각에 엄마와 함께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빠의 다이어리에만 묻어뒀다.
아빠의 다이어리에는 '급여 미지급' '체불'이라는 단어들 가운데 '선유 생일선물'이 적혀있다. 또 선유의 엄마는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정육점 주인에 기함하며 다신 가지 말자고 으름장을 놓는다. 선유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란 아이인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면 생활고에 찌든 엄마와 선유가 사는 방은 유흥가를 둘러싼 낡은 건물이다. 커튼 하나 달지 않아 선유네 방은 밤마다 오색불빛이 찬란해 뒤척이기 일쑤다. 하지만 선유는 정작 혼자 있을 때는 불을 잘 켜지 않는다. 가족들의 사랑을 잃은 아이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런 선유에게 정국은 '힘'을 주는 빛과 같은 존재다. 특히 노래가 특기인 정국은 이름과 걸맞게(?) 극 중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부른다. 노래 제목처럼 정국은 선유에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찾아오는 '봄날'을 선물해주는 사람임을 암시한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 정연경 감독은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못난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영화를 만들었다. 정 감독은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어린이의 시각으로 섬세하게 다루며 '무책임한 어른'들에 일침을 날린다.
앞서 '우리들' '우리집'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 조금은 성장한 시선이지만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이 그랬듯이 정 감독 역시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영화는 잔잔하지만 소재는 결코 가볍지 못했고 오히려 더욱 무거웠다. 배우들의 연기도 빈틈하나 없었다. 조서연(선유), 최로운(정국)의 표정 연기는 몰입감을 높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날'을 기다린다면 '나를 구하지 마세요'로 먼저 힐링을 느끼길 바란다. 러닝타임은 97분. 개봉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당초 3일에서 10일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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