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卽說-11] 묘심 종정,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더라”

편집국 / 기사승인 : 2024-12-30 16: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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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열 한 번째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 거부할 수 없는 그 유혹!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더라’를 연재한다.  

 

 눈 덮힌 자비정사.

 

다사다난 했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동짓날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어지러운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들을 돌이켜보며 한반도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 보았다. 외신들이 연일 앞다투어 보도하는 뉴스에 한국이 나아갈 길이 실로 어찌 될는지 밤잠 설치는 국민이 대다수일 텐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가고 있다.

 

지난 12월24일 성탄전야에 일이다. 한밤 중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수화기를 들었다. 평소 같으면 전화를 직접 받는 일은 드물지만 종교가 다르긴 하여도 성인(聖人)이 태어난 생일이 아닌가 하여 크리스마스에는 절에서도 잠시 절문을 닫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자 한 터라 늦은 시각에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자비정사 묘심 스님 계신가요. 너무 급해 전화 했어요

잠시 머뭇하고는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얼마 전 무작정 묘심 스님을 찾아 뵙고자 약속을 잡고, 마음가짐도 경건히하며 며칠을 기다리던 중에 딸아이 몸상태가 심상치 않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저희 딸이 극단적 시도를 했어요. 다행히 의식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위급한 상태는 면하여 내일이라도 스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면 안될까요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문을 열었다.

 

지중한 인연으로 부처님 전에 찾아뵙고, 자식의 생(生)과 사(死)를 걱정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살리고자 이 곳에 방문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지요

 

내가 말하는 중에도 몇 번이고 말을 끊고 중간에 끼어들어 하는 말.

 

큰스님, 제 딸을 살려주세요. 딸 아이는 빙의가 확실한데, 스님만 뵙고 나면 살 것 같다고 했는데 제가 우매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이런 변고를 당했어요

 

다급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어머니의 음성에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따님이 어디 살고 있나요. 지금 의식이 없고 입원 중인가요. 그럼 어머니만 절에 오실 건가요

 

몹시 불안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어머니는 대답했다.

 

청주 옆이 집입니다. 저는 스님께서 아무 때고 만나만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올라 갈게요. 부디 딸아이를 살릴 방도를 알려주세요

 

다음 날 첫 차로 서울에 올라 오겠다고 거듭 사정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그리하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법당에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순간 오래 전 보았던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오직 1년에 한 번 열리는 핼러윈 축제를 위해서 사는 핼러윈 마을의 리더 잭 스켈링턴은 해골귀신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핼러윈 준비를 하던 잭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던 어느날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도착하면서 자신이 사는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마을을 보고 핼러윈 마을에서도 크리스마스 축제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잭의 일당이 크리스마을의 산타를 납치하고, 산타를 대신해 해골과 거미, 뱀 등 기괴한 것들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해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크리스마스의 들뜬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온통 소동만 일어나는데. 그 모습을 본 잭은 자신이 무언가 크게 잘못했음을 깨닫고 귀신들과 함께 원래의 크리스마스 모습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벌레 귀신 우기부기가 산타를 잡아가 버리면서 잭과 그의 애인 헝겊귀신 샐리는 산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산타를 구출하고, 고마움의 뜻으로 핼러윈 마을에도 산타가 함박눈을 내려주면서 잭과 애인 샐리도 사랑을 확인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크리스마스 악몽’은 호러와 판타지적 세계관이 잘 접목 되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개성미 넘치는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팀 버튼 특유의 공포스러움과 더불어 기괴함, 사랑스러움의 조화가 절묘하게 돋보이는 작품이라 애니메이션임에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물론 최근 개봉했던 그의 ‘비틀쥬스 비틀쥬스’ 만큼 내게 큰 감동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내게 팀 버튼의 세계는 신선함이었다.

 

그리고 한밤 중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게도 악몽 같았던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십 수년 전의 일이다. 그 날도 성탄전야였다.

 

교통사고로 피가 낭자한 영가(靈駕)를 등 뒤에 달고, 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검은 낯빛의 한 남성 K씨가 있었다. 남성은 온 몸이 음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과도 같이 횡설수설 하는 K씨의 눈빛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등 뒤에 독기를 품은 영가가 한맺힌 표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스님, 저는 몇 해 전 김수미씨가 여기 절에서 시어머니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통해 본인이 빙의로부터 해방되고 편해졌다는 기사를 접하고, 저희 아들에게 붙은 귀신을 떼어 내고 싶어서 왔어요. 저희 아들은 공부도 잘 했고, 모범생에 재능도 많은 건강하고 밝은 아이였어요. 정말 멀쩡했는데 몇 년 전부터 오래 전 죽은 작은 아버지가 보인다고 악몽을 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죽은 제 남동생의 흉내를 내는가 하면, 생전 동생의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밤에는 뜬눈으로 난동을 부리고,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커튼을 치고 방에서 나오지 않아요.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을 때 동행했던 여자 친구가 있는데 제 아들은 그 여자의 목소리도 내면서 자꾸 무서운 소리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척추와 경추 골절로 즉사한 제 동생의 사고를 아들은 전혀 모르는데도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하듯 말하면서 허리와 목이 끊어질 듯 아파서 꼼짝 할 수 없다고 해요 

 

나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K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가를 살피다 이상한 점이 있어 물었다. 

 

그런데 동생분 목에 피멍이 보이네요. 혹시 돌아가신 분이 자해를 시도하거나 일부로 사고를 낸 걸까요

 

K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가 꺼낸 말은 이러했다. 술만 마시면 여자친구를 의심하고 괴롭히는 동생을 여자집에서 반대하자 동생이 홧김에 술을 마시고 여자친구를 태우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어요. 그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시도는 했고요. 우울증도 있고, 공황장애와 강박증도 있었지요. 다만 가족들이 창피해서 쉬쉬 하다가 치료할 엄두도 못 냈어요.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전염병자 취급을 하니, 그렇게 안타깝게 하나뿐인 동생을 잃었어요 

 

K씨는 그 동생의 영가가 아들에게 딱 달라붙어 있다고 굳게 믿고 내게 아들에게 빙의된 동생영가를 천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런데 빙의된 건 K씨의 아들만이 아니었다. 

 

K씨 본인도 심각한 빙의상태였다. 검은 빛에 음하고 찬 기운으로 가득한 K씨 역시 식도암이라고 했다. 수술을 앞두고, 죽은 동생의 모습이 더 자주 꿈에 나온다는 것이다. 불면증은 이미 오래 되었고, 식욕도 없다는 산 송장 모습의 K씨 부자(父子)는 그 상태로라면 꼼짝없이 죽음을 면할 길이 없었다.

 

나는 빠른 시일 내에 길일을 택하여 죽은 동생과 여자친구의 천도의식을 행하고, 구병(救病)시식을 통해 K씨와 그의 아들에게 빙의된 영가들을 떼어내 극락왕생하는 의식을 했다. 

 

천도재 의식을 하기 전날 K씨의 아들은 절대로 자비정사에 올 수 없다고 난동을 부리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큰 소리로 웃는가 하면, 칼을 들고 무서운 눈으로 부모를 노려보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욕실에서 유리를 깨고, 자해를 하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K씨는 아들을 들쳐업고 절로 달려왔다.

 

본디 몸 속에 들어앉은 영가를 몸 밖으로 꺼내려하면 몸의 주인보다 먼저 아는 것이 바로 빙의된 영가들이다. 그들은 우매하지만 살고자 하는 욕구 즉, 누군가의 몸에 기생하여 공존하려는 원념이 강하다 보니 어떻게든 구병시식과 천도재를 피하기 위해 평소보다 몇 배로 난동을 피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에 찾아와 힘들어도 의식을 통해 빙의된 영가를 천도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되는 것을 주변 가족이 알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간과하고 시기를 놓이면 더 큰 화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K씨와 그의 아들은 빙의로부터 자유를 되찾고, 현재 아들은 연예인 활동도 하고 있다. 김수미씨 생전에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며 그 당시 나를 찾아온 것을 요즘도 무척 감사히 여긴다. 하여 얼마 전 고 김수미씨의 슬픈 비보에 K씨와 아들도 함께 애도를 표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2024년 12월25일 아침부터 자비정사 총무의 전화기가 쉴새 없이 울려댔다.  

 

총무님, 저 서울에 가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깨어났어요. 그런데 자비정사에 본인이 직접 가게 해달라고 해요. 이제 막 깨어난 아이가 병원을 나가 서울까지 가긴 너무 멀고 힘든데 오늘 말고 다음에 갈게요

 

그렇게 다급하게 딸을 살려달라고 한밤 중에도 전화를 했기에 자비의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준 것인데 결국 또 빙의된 영가의 장난으로 귀한 생명을 잃을까 싶어 안타까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쉬던 중에 전화를 받은 총무가 그 어머니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께서도 구제할 수 없는 중생은 거두지 말라셨습니다. 벌써 몇 차례 저는 어머님을 위해 아니 따님을 기회를 드렸고, 영가장애로 인해 더 큰 고통과 병의 악화가 있을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 드렸으나 제 말씀은 무시하고 어머님 판단으로 오고 안 오고를 결정하셔서. 더는 예약도 힘든데 지난 밤 스님께서 직접 전화를 받으셔서 

 

아니예요. 총무님, 딸아이가 몸을 추스리면 바로 올라갈게요. 이제 저희 딸이 살 수 있게 됐어요. 원래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온 종일 이런 말들이 오가는 그렇게 악몽같은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찰에는 지난 번 내린 잔설이 아직 남아 고즈넉한 풍경 속에 고요한 연말이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슬픈 비보가 전해져 왔다. 딸아이가 회복하면 상경 하겠다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이러했다.

 

총무님, 어떡해요! 저희 손녀딸이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오는 길에 차에 치여서 의식이 없어요. 혹시 제가 부처님과의 아니면 스님과의 약속을 어겨서 벌을 받는 걸까요

 

총무보살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말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머님, 지금 손녀분과 따님은 두 분 다 병원이신가요? 제가 무슨 인연으로 이리 고통스러운 전화를 한 달이 넘게 이어 가는지 알 수 없으나 오늘이라도 서울에 오시지요. 간병인에게 모두 맡겨두고 열 일 제쳐두고 오세요

 

어제 낮 자비정사로 찾아온 여인 A씨는 혼비백산한 얼굴에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창백했다. A씨가 딸과 손녀 이야기를 하며 흐느끼는데 그녀의 음성에서 다른 사람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A씨에게 물어보니 올해 초 암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하다 남편이 죽고 난 뒤부터 딸아이가 시름시름 앓더니 헛것을 보고, 방언처럼 뜻 모를 소리를 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며, 잦은 자진(自盡)시도를 해왔다는 것이다. 독실한 특정 종교의 신자라서 죽은 남편의 천도재나 사십구재조차 지내준 적이 없다고도 했다. 

 

올 연말은 마음도 번잡하여 일주일쯤 두문분출하려 하였기에 마침 A씨와 자손들에게도 길일이 오늘이라 급하게 스님들을 수소문하고, 준비되는 만큼 정성스레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준비해 행했다. 

 

비록 딸과 손녀는 병원에 있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난생 처음 절을 하는 A씨의 모습은 모성애 그 자체였다. 기도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한 A씨에게서 늦은 저녁 전화가 왔다. 딸이 손녀와 한 병실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비록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테지만 이제는 다시 태어난 딸과 손녀를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겠다고 했다.

 

최근 안타까움 선택을 한 젊은 연예인들의 기사를 접하면서 마음 한 켠이 서늘했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도 있어서 슬픔이 더 컸다.

 

<빙의> 책에서도 말했 듯,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런 일은 없었다. 태어난 존재는 그림자가 따르듯 반드시 죽음이 찾아 들고,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다. 

 

일타 스님의 영가천도법어에 의하면 옛 성현들은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옷을 오래 입어 낡았으니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럼 어떤 옷으로 갈아 입고 어떤 차로 갈아 타게 되는 것일까. 그 결정권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 지은 바 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바로 다음 생이다. 살아 생전에 내가 지은 행위, 내가 추구한 바에 따라 인연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 선택을 한 영가는 다시 환생 할 수 없다. 극단적 선택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나는 고통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지옥계의 극히 일부만 이라도 안다면 결코 어리석게 함부로 죽음을 택하진 못할 터인데.

 

뿐만 아니라 자살의 업은 대를 이어 그 가족과 주변인을 괴롭힌다. 그렇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더라. 그토록 소중한 생의 의미와 사후세계를 안다면 결코 자살할 수 없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억지가 아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생과 사,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부처님과의 약속이 또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새겨본다. 뜻 깊은 연말연시 모쪼록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생생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길 오늘도 기도 정진한다.

 

 묘심 종정.

■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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