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너무 아파요 .… 살아 생전 내가 들은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열 번째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빙의는 누구에게나 온다"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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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곡가, 가수, 화가, 배우, 작가, 예술가... 모두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도 그들의 작품은 대중 곁에 남아 영원히 존재한다. 지난 해 짧은 세상 나들이를 마치고 떠난 '조지 윈스턴'의 유명한 앨범 '디셈버(December)'를 처음 접한 건 1990년,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 출가자인 내게도 힘든 일이 있어 번민과 고뇌의 날을 보내던 중에 청아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피아노 연주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다.
하여 겨울이 되면 문득 그의 연주곡이 생각나곤 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스마트폰에서도 좋아하는 곡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난주 오랜만에 그의 'Thanksgiving'을 들으며 117년만의 폭설이 된 2024년 첫눈 속에 자비정사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3일간 고립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 하루는 설악산 못지 않은 설경에 동영상도 사진도 촬영하고 새하얀 눈이 주는 영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목도리에 모자, 장갑도 끼고 절 마당도 거닐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주린 배를 찬물 몇 바가지로 채우고도 악착같이 공부하고, 어린 동생도 업어 키우던 그 어린 시절에는 눈이 와도 마냥 기쁠 틈도 없이 고달팠기에 칠십이 넘은 이 나이가 오히려 첫눈를 기다리는 마음은 소녀 시절보다 애틋하다.
그런데 첫눈의 설레임도 낭만도 과하면 아니한만 못하다는 옛말처럼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충분했던 올해.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대형 고드름에 차도 사람도 위협받는 상황, 그 속에서 나는 잠시 오래 전 인연이 된 고 김수미 배우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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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묘심 종정 |
오래 전 시어머니의 사진을 보면 너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많은 영체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빙의 상태로 이 곳 자비정사로 나를 찾아온 김수미씨는 특히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빙의되어 처음 보는 순간 방송에서 한 때 한국의 '나탈리 우드'로 불리우며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맛깔 나는 연기를 선보이고, 종횡무진 활약하던 강인한 생명력은 볼 수 없고, 눈이 시리고 아파 어쩔 줄 몰라하며 한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마리 작은 새를 보는 듯 안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여 살려달라 애원하는 그녀를 위해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봉행하던 날, 눈물이 나면 울고, 붉은 팥을 맞을 때는 소리도 지르고 하더니 이내 시리고 아파서 살 수 없다던 눈이 시원해지고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 순간 시어머니도 천도되어 더는 김수미씨 안에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만난 김수미씨는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다. 천도재 이후 시어머니의 사진을 안고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더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처럼 무섭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그렇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예배를 볼 때 절실한 간증도 하고, 하나님 말씀에 의해 살아온 김수미씨가 내 책 "빙의"를 보고 "내가 바로 빙의구나!" 깨닫고, 자비정사에서 시어머니를 위한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통해 빙의로 인한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고, 죽고자 하던 마음을 돌려 제2의 황금기를 살게 되었다고 김수미씨의 저서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를 출간하기 전부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뿌듯했다.
그 후 때로는 친구처럼 때론 연기자와 팬으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고 김수미씨와 최근 몇 해는 연락도 없이 소원했지만 그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미리 알았던 걸까? 사인으로 의료진이 당뇨 쇼크에 의한 심정지를 발표하기 며칠 전 불현듯 김수미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몹시 지친 음성으로 "스님 너무 아파요. 지금은 통화를 할 수 없어서 전화할게요..." 그게 살아 생전 내가 들은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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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 십 여년이 된 상담노트를 펼쳐 보았다. 노트에서 고 김수미씨와 처음 대화를 나누던 날 적어둔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2024년 10월을 마지막으로 그 뒤에는 아무런 생의 반응이 없음을 미리 예견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살다간 국민 배우 '일용엄니' 김수미씨는 이제 볼 수 없지만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던 작품만은 영원히 남아 고인을 추억하게 할 테니 이제는 편안한 천국에 살기를 그녀의 사십구재를 앞두고 축원한다. 49재란, 삼계와 육도에 가서 누리는 후생의 안락과 명복을 죽은지 49일 되는 날 지극정성 기원하며 지내는 재이다.
일평생 세인들의 관심 속에 회자되며 고단했던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6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살아 생전 모든 인연 끊어내고 극락왕생하여 편안하기를... 이생의 인연이 다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그게 마지막이고 끝이라 여기는 어리석은 중생심이 현세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취약한 마음의 감기와도 같은 "빙의"와 혼재되는 순간 사람들은 내 곁에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오기 전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중생도 많다. 응급실에 근무해 본 의사나 간호사 의료인들은 삶과 죽음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안타까운 비보에 한동안 산사에서 글쓰기조차 내려놓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매 순간 생과 사의 경계에 머무는 현대인에게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오늘"을 살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경계에 찾아드는 빙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혼자 힘으로 버티기 힘든 순간에 나를 찾았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며 오늘도 이렇게 산사의 아침은 밝아온다.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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