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홍세기 기자]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신탁 피해투자자 대책모임이 19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한국투자증권 본사까지 꽃상여와 모형 시신을 앞세운 집회를 벌였다. 상복을 입은 피해투자자들이 참여한 이번 집회는 투자금 전액 손실에 대한 절박한 호소와 판매사 책임 추궁의 의미를 담았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우리은행 등이 2019년 판매한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는 벨기에 브뤼셀의 정부기관 임대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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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의 꽃상여 모습 [사진=하비엔뉴스] |
해당 펀드는 벨기에 정부 기관인 건물관리청(RDB)이 입주한 투아송도르 빌딩의 99년 장기임차권에 투자받은 자금과 현지 금융기관 대출을 합쳐 투자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2024년 6월 선순위 대출 만기가 도래했으나 원금 상환에 실패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선순위 대주인 영국 생명보험사 로쎄이(Rothesay)가 담보 자산을 강제 매각하면서 후순위 투자자들은 전액 손실을 보게 됐다.
벨기에펀드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총 2500여명의 투자자가 약 9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펀드 판매 규모를 500~600억원으로 추산하지만, 피해자들의 주장과는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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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석한 투자피해자들 [사진=하비엔뉴스] |
투자자들 대부분은 한국투자증권과 오랫동안 거래했던 60대 이상의 은퇴자들로, 퇴직금이나 노후자금 등 목돈을 투자한 경우가 많았다.
한 투자자는 "생활비조차 막막하다"며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했는데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투자자들은 펀드 판매 과정에서 구조적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선순위·후순위 대출 구조와 선순위 대주의 강제 매각 가능성에 대한 고지가 부실했다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벨기에펀드 피해자 대책위는 "벨기에 정부가 임차한 건물에 투자하므로 안전하고 안정적이라는 설명을 반복하며 전액 손실 위험을 숨긴 채 투자자를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투자자는 투자성향이 '안정형'임에도 불구하고 '적극투자형'으로 변경해 투자하게 됐으며, 영업사원은 "회사가 금융사고 시 전액 보상해준다"는 등의 말로 투자를 유도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투자증권이 해당 펀드 출시 당시 90페이지에 달하는 설명서를 제작했지만, 실제 판매 과정에서는 3페이지 분량의 간략한 설명서만 제공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번 시위에서 피해투자자들은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불완전판매 및 투자 권유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 ▲선순위 차주의 자산 매각 과정 전면 재조사 ▲금융감독원의 적극적인 피해 구제 대책 마련 ▲실질적인 피해 보상안 마련 및 원금 100% 배상 ▲한국투자증권의 책임 있는 공식 사과 등이다.
이들은 "이번 사태는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닌, 정보 비대칭·불완전판매·구조적 불투명성 등 복합적 문제에서 비롯된 금융소비자 보호 실패 사례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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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 본사 전경 [사진=하비엔뉴스] |
이에 대해 한국투자증권은 펀드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일부 불완전판매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민원을 접수한 투자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배상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배상비율을 점차 상향 조정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초기 20%였던 배상비율을 25%, 35%를 거쳐 최근에는 40%까지 높이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정립한 증권사 불완전판매 책임 최소 배상비율 40%와 일치하는 수준이다.
다만 이 배상비율은 투자원금 기준이 아닌, 원금에서 과거 배당받은 금액을 제한 나머지 액수를 기준으로 적용돼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투자자들마다 투자성향, 투자상황, 판매 절차 등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보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투자자들과 원만하게 협의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고객들이 민원을 접수하면 각 개별 사례를 살펴보고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면 거기에 맞춰 배상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벨기에 부동산 펀드 관련 불완전판매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분쟁조정국은 "벨기에 부동산 펀드 상품을 판매할 때 작성된 가입신청서 등 관련 증빙 서류들을 증권사 등으로부터 요구해 받은 상태다"라며 "가급적이면 상반기 중에 해당 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1분기 민원 건수는 51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6.99% 급증했으며, 이 중 507건(98.26%)이 펀드 관련 민원이었다. 이는 벨기에 펀드 사태의 여파로 분석된다.
벨기에 펀드 외에도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해외부동산 투자 펀드의 손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04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슬레 본사 건물에 투자했다가 투자금의 70% 손실로 청산이 진행 중이다.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1호'도 36.69% 손실을 보고 있어 투자자들의 추가 손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벨기에코어오피스 부동산신탁 사태는 해외 부동산펀드의 구조적 위험성과 판매 과정의 투명성 문제를 다시 한번 부각시키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투자자들과 판매사, 그리고 금융당국 간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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