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卽說-12] 묘심 종정, “예술가의 죽음 뒤에는 사랑만 있지 않더라”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01-09 10: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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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열 두 번째 ‘모든 예술의 근원은 사랑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죽음 뒤에는 사랑만 있지 않더라’를 연재한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비정사.

 

<화엄경>에 이르기를 ‘어두운 곳의 보배는 등불이 아니면 볼 수 없고, 부처님의 불법(佛法)은 중생을 위해 설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

 

2025년 새해가 밝아오고 첫 눈이 또 내리고 이내 한파가 찾아와 잔뜩 웅크리게 되는 요즘, 안타까운 여객기 사고 소식에 탄핵 정국까지 새로운 시작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형국이라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다. 지난해 겨울은 유독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오랜 지인 고(故) 김수미씨 별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 연말은 유독 비보가 자주 있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배우 송재림, 개그맨 성용, 그리고 여행 중 심정지로 짧은 생을 마친 연기자 박민재, 유행어 오겡끼데스까를 남긴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너무도 빛나고 아름다운 예술인으로서의 순수한 예술혼을 불어넣은 작품으로 수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카타르시스를 주며, 함께 호흡해온 훌륭한 젊은 예술인들이 과연 그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엔터테인먼트산업 성장으로 해마다 배우 및 가수 지망생은 연극영화 및 음악 뮤지컬 전공자 수 만명을 제외하고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과연 이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어디 있으며, 몇 몇 유명인들이 독식하다시피 하는 우리 문화예술 현장에서 어려운 숙제처럼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예술인 처우개선은 언제나 가능한 일인가 싶다. 

 

얼마 전 나를 황급히 찾아온 배우 k씨가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처음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꺼내는 그녀는 종이인형처럼 바싹 마른 체형에 매일 밤 잠도 자지 못하는 불면증으로 식욕도 없고, 급기야 듣지 말아야 할 소리마저 듣는 심한 빙의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K씨도 연기연습을 마치면 늘 남자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공유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사랑의 힘으로 버티며 그렇게 5년을 사귄 애인이 변심하고 K씨보다 조건 좋고, 나이도 어린 여배우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과 분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이내 자책하던 K씨에게 실연의 상처로 시작된 우울증은 이미 깊었다. 공황장애증세를 보이고, 건물이나 지하철 등 폐쇄공간에는 들어서지도 못하고, 오직 자신의 서너 평 남짓한 방 안에 갇혀 감옥살이 하듯 살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깊어 약해진 정신에 빙의는 어김없이 찾아들기에 K씨는 수 많은 조상영가뿐 아니라 온갖 잡신까지 들러붙어 나를 찾은 것이다. 

 

K씨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다. 나는 누나를 데리고 온 남동생의 눈을 유심히 살폈다. 매일 누나를 보살피고 있는 남동생도 이미 빙의 상태였다. 다만 남동생은 극도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아닐 뿐 빙의가 확실했다. 빙의는 가족은 물론 연인, 친한 지인간에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다.

 

K씨는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세인의 입에 회자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하는 동안에도 평소보다 세심히 주위를 살펴야 했다. 마침 길일이 바로 있어 K씨와 남동생에게 빙의된 인연 영가를 천도하고 수 십일이 지난 요즘 K씨는 해맑은 얼굴로 종종 절에 들른다. 

 

버스도 타고, 택시도 타고, 지하철도 탄다며 이제는 다시 현장에서 배우일도 알아본다고 긍정적 마인드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포부를 그리는 K씨를 보면서 모든 예술의 본질에는 사랑이 있지만 예술가를 죽이기도 또 살아가게도 하는 것은 사랑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요즘 첫 발을 떼기도 전부터 아역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하는 어린이도 있고,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이 오디션 경연프로그램에 출연해 순위권 안에 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 ‘톱’을 넘어 전 세계에 우뚝 서는 배우, 가수, 예술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넘쳐나고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인 상황에서 과연 열정만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필자가 정법(正法)에 귀의해 여법한 수행을 하다 보니 이 사바에는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병고에 허덕이는 중생도 무수히 많고, 중유(中有)의 생명으로 사람도 아니고 영가(靈駕)도 아닌 채 구천을 방황하는 중음신(中陰神)도 수 없이 많음을 똑똑히 목도했다.

 

의사도 전공 분야가 따로 있듯이 한국 불교에는 무수한 사찰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 기도의 원력이 각각 다른 법이다. 그 중 자비정사는 빙의 환자 전문 기도 도량으로 병명도 없이 아프고 원인과 이유도 모른 채 사업이 실패하고, 가족 중에 단명사하는 사람이 발생하는 등 병고 액란으로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불행한 중생을 위해 기도드리는 도량으로 알려지다 보니 유독 안타까운 사건 사고를 많이 접하게 된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의 미술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라는 작품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질로 하늘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에서 고흐는 정신병원에 있는 그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연속적이고 동적인 터치로 그려진 하늘은 굽이치는 두꺼운 붓놀림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연결되고, 그 아래의 마을은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보여줬다. 고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들 한다. 과연 죽음 앞에 초연할 사람이 있을까.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는 푸른 빛으로 그려진 하늘과 대비되는 밝은 노란 빛으로 그의 감정을 그려낸 수작이다. 아를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해바라기와 같은 강렬하고 밝은 노란빛의 그림을 주로 그려냈었다. 그런 그가 1888년 12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끔찍한 일을 벌이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의 고달픈 삶이 참으로 부질없고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한 양극성 장애를 보였던 고흐가 생전에 즐겨 마셨다고 하는 압생트라고 하는 짙은 초록새의 술이 있다. 그 술의 마약성분이 환각을 일으켜 정신병이 깊어졌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수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고흐의 심정을 고스란히 꺼내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묘심 종정.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너무 유명한 이 삼단논법에 인간의 죽음이 명시되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소크라테스의 자리에 ‘나’ 자신을 대입하고 싶어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찾아와 빙의를 호소하는 수 많은 중생들을 볼 때 나는 생각한다. 위태로운 촛불과 같은 목숨을 살려달라 매달리는 아우성을 듣고 뿌리칠 수 없어 이 곳 자비정사 도량에 발을 들인 빙의로 인해 아픈 이들 모두를 살려낼 방도는 내게 없다. 그러나 간절히 살아있는 내 자식을, 내 배우자를, 내 부모와 형제를 빙의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 책 영혼의 표지에는 빙의에서 벗어나면 행복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지금도 게임 중독으로 죽음의 늪에 빠져 생을 포기하려고 하는 10~20대, 정신이 혼미해져 환청과 환각에 빠진 사람들, 우울한 마음으로 평생을 헤매며 사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 땅의 수 백만 빙의 환자들이 안타깝게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이 병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낫는 병이고, 이 질곡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빙의에서 벗어나면 행복한 삶이 찾아 온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어두운 곳의 보배는 등불이 아니면 볼 수 없고, 부처님의 불법(佛法)은 중생을 위해 설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제 아무리 빼어난 능력도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적절한 시기에 쓰여지지 않으면 무용한 것이다. 빙의의 어둠 속에 허덕이는 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자 하여도 그 음성이 온전히 전해지지 아니한다. 이는 몸 속에 들어앉은 영가의 장난으로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강한 집념을 갖고, 내게 오는 이들에게 나는 ‘살자’ ‘살아보자’라고 말한다. 극진한 마음으로 천도재를 올리고, 구병시식을 통해 빙의된 영가로 인한 병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여 한 생명이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면 그토록 살고싶어 안간힘 써도 타고난 명(命)이 그뿐이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가 간절히 살아보고자 했던 세상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묘심 종정. 필명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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