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회계처리 소급 적용 않기로 생보사 제재 부담 덜어
[HBN뉴스 = 홍세기 기자] 금융감독원이 삼성생명 등 국내 생명보험사의 '일탈회계'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2025년 결산분부터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으로 처리해온 약 12조8000억원을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맞춰 '자본'으로 재분류해야 한다. 다만 과거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아 생보사들의 제재 부담은 덜게 됐다.
2일 생보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일 한국회계기준원과 공동으로 'K-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고 생명보험협회가 질의한 유배당보험계약 배당금 회계처리 방식에 대해 "일탈회계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공식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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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생명 본사 전경 [사진=삼성생명] |
이는 2022년 말 IFRS17 도입을 앞두고 한시적으로 예외를 허용했던 방침을 3년 만에 철회하는 조치다.
금감원은 중단 결정 배경에 대해 "K-IFRS17이 계도기간을 지나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일탈회계 유지로 인해 제기되는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며 "국내 생명보험사가 일탈회계를 계속 적용하는 경우 한국을 IFRS 전면 도입 국가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일부 의견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 일탈회계 논란의 핵심 배경
삼성생명은 1980~1990년대 판매한 유배당 보험상품의 보험료로 삼성전자 지분 8.51%(현재 시가 약 30조원)를 취득했다. 유배당 계약은 투자 수익이 나면 차익을 계약자에게 배당하도록 설계됐지만, 삼성생명은 해당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배당도 하지 않아 계약자 권리 침해 논란이 제기돼 왔다.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이 도입되면서 해당 지분을 시가로 평가해 '보험부채'로 인식해야 했지만, 당시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보험부채가 과소 표시돼 재무제표 이용자에게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예외적으로 '계약자지분조정'이란 별도 부채 항목으로 처리하는 일탈회계를 허용했다.
그러나 올해 2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율 상승으로 금융산업법상 보유한도(10%)를 지키기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삼성생명이 주식을 매각하면서 일탈회계 적용의 전제가 깨졌다며 예외 중단을 주장해왔다.
◆ 삼성생명, 12.8조원 '자본' 재분류 예상
일탈회계 중단에 따라 삼성생명은 지금까지 '계약자지분조정'(부채)으로 처리해온 약 12조8000억원을 국제기준에 맞게 재분류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 상승으로 해당 금액은 올해 6월 말 8조9000억원에서 9월 말 12조8000억원으로 급증한 상태다.
IFRS17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 계획이 없을 경우 해당 금액이 '자본'으로 분류된다.
삼성생명 측도 "현재 지분 매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보험부채를 0원으로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자본 처리 방향이 확정적이다.
삼성전자 주가를 10만원으로 가정할 경우 총 16조원 규모 중 4조원은 법인세 납부를 위한 부채에, 나머지 12조원이 자본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만 해당 지분이 유배당 계약자 몫이라는 점은 주석에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유배당보험계약을 다른 보험계약과 구분해 재무제표에 별도로 표시하고, 해당 계약이 회사의 재무상태·성과·현금흐름에 미친 영향도 공시해야 한다.
◆ 이찬진 금감원장 "소급 적용 안 해...혼란 방지"
이찬진 금감원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생명 일탈회계 정상화 문제는 금융위원회와 이견이 없는 상태로 빠르면 12월 말, 늦어도 내년 1월에는 정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비준해 채택한 정상적인 국제회계기준대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며 "(2022년) 그 당시에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하지만 지금은 필요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원장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소급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며 "2025년 회계결산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가 '회계정책의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거에 잘못 작성된 재무제표에 대한 오류 수정이 아니며, 따라서 심사·감리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 배당 논란·소송 가능성은 계속될 전망
계약자 몫을 '0원'으로 공시하게 되면서 향후 계약자 측의 지급 요구나 소송 제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선 수십 년간 계약자 몫을 사실상 부채처럼 관리해 온 기존 처리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이후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유배당계약을 다른 보험계약과 분리해 별도 표시하고 그 영향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하면서 유배당계약에 대한 회계처리가 '감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이 처음으로 재무제표 안에서 독립된 감시·검증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유배당 계약자 몫은 다른 보험계약에 섞여 있어 외부에서 별도로 파악하기 어려웠고, 회계 구조도 복잡해 실제로 계약자 몫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시민단체나 투자자, 감사인이 구체적으로 따져보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배당계약이 다른 계약과 분리돼 공시되고, 회사 재무상태와 성과에 미치는 영향도 따로 드러나게 되면서, 이해관계자들이 관련 수치를 직접 분석하고 필요할 경우 근거를 갖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즉, 단순히 회계처리 기준을 바로잡는 수준을 넘어,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에 대한 시장과 사회의 감시 기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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