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열세 번째 ‘네 부모 얼굴이 궁금하다’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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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자비정사 설경. |
을사년을 맞이하여 연녹색 비단뱀의 지혜로움으로 위없는 공덕이 대한민국 곳곳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폭설과 한파도 지나가고 다가올 봄을 고대하는 마음은 이미 입춘을 향해가고 있다. 산사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관망하자니 답답한 순간도 있고, 안타까운 사연도 넘쳐 나는 게 중생들이 머무는 사바 세계임을 새삼 깨닫는다.
<법구경>에 이르기를
廉恥雖苦 (염치수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 괴롭다 해도
義取淸白 (의취청백) -옳음과 이(利)를 버려 집착이 없고
避辱不妄 (피욕불망) -수치스러움을 피하고 허망하지 않으면
名曰潔生 (명왈결생) -이를 일러 고결한 삶이라 하느니라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 삶을 더 멋지게 살아가려 할 것이다. 억겁의 인연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인연의 굴레에서 부모ㅡ자식, 부부의 연을 맺기는 더 힘든 일이다. 여기 백년가약을 맺고, 아들 딸 낳고 평생을 동고동락한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
2020년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40대 후반의 남성 K씨가 식은 땀을 흘리며, 오한에 떨며 공포에 시달려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자비정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산발을 한 긴 머리채를 한 여인과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노인의 형상을 한 뿌연 그림자는 K씨를 따라 들어왔다. 그러더니 이내 K씨의 몸 속으로 숨어버렸다.
고등학생 아들이 매일 물건을 집어 던지고, 유리를 깨고, 칼을 들고 아내에게 달라들며 서로 죽일 듯 싸우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는 입 안에 거미가 기어 다닌다고 구토를 하는가 하면, 밤새 귀신이 보인다고 죽은 사람들이 말을 건다고 불면증을 호소하며, 난동을 피우는데 그 빈도가 잦아지고 행태는 더욱 포악해져서 정신병동에 입원을 시키면 유순한 아이가 되어 이내 퇴원을 했다는 것이다.
K씨의 아내는 건강한 체질로 순종적인 성격이었다. 남편과 아들 둘에게 헌신적이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며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이어오던 터라 갑작스런 큰 아들의 낯선 행동에 심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직장마저 그만둔 상태였다.
K씨의 차남은 전교 상위권을 놓인 적 없는 모범생으로 의대진학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하는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장남이 심각한 조현병 증세, 강박과 공황발작, 우울증, 양극성 장애 등으로 정신 병원 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열 손가락과 손톱을 물어뜯어 피가 나기 일쑤이고, 속눈썹과 머리카락을 뽑는 발모벽으로 외모에도 심각한 적신호가 켜졌다.
그런 가족들을 보는 K씨의 고충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중소기업을 물려받은 K씨는 선천적으로 부지런하고,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가업을 이어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트렌드에 맞는 경영 방식으로 직원들에게도 신임받는 Ceo였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지만 가화만사성이라고 가정이 편안해야 만사가 순조로운 법인데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던 K씨의 말은 이러했다.
“스님! 저는 BBC에 나온 묘심 스님 영상을 봤어요. 거기에 보니 구병시식이라는 걸 하더라구요. 연기자 김수미씨도 구병시식을 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저희 가족이 모두 빙의된 거 같아서요. 3년 전 부모님이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신 후 얼마되지 않아 큰 아들의 꿈에 부모님이 보였대요. 그리고 제 처의 꿈에도 두 분이 나왔대요. 두 분이 살아 생전 같지 않고, 남루한 차림에 해골같은 모습이라 무섭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성당에 다녀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창문 밖의 앙상한 복사꽃 몽우리를 바라보던 K씨가 소리를 질렀다.
“저기 저 유리창에 보이잖아요. 노려보는 아버지와 칼을 든 어머니요. 아, 스님 살려주세요. 제발.”
K씨는 아들들을 절에 데리고 올 수는 없다고 했다. 절에 오려면 아이들이 빙의라는 걸 설명해줘야 하는데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모태신앙이 가톨릭인 아내에게는 말조차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49재도 지내지 않았고, 기일에 제사도 명절에 차례조차 모신 적 없다고 했다.
살아서는 자식을 애지중지한 부모라 해도 죽어서 고혼이 되면 사뭇 달라질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중생인지라 돌아가신 부모를 위한 지극한 천도재를 모셔 두 분의 한을 풀어 천도해야함을 설명하자 K씨는 눈물을 흘렸다.
“스님, 그러면 빙의는 가족 간에 옮겨 다니나요? 저도 빙의이고, 제 아내와 둘째 아들도 빙의 일까요? 하루 아침에 씻은 듯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는 걸까요? 천도만 하면 빙의가 좋아지나요? 기도를 한 번만 하면 되는 건지 다시 재발하지는 않는지.”
쉴새없이 질문을 하는 K씨에게 나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버님의 공덕으로 사업이 번창하고, 자손이 배불리 먹고, 학업도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가정이 평온했는데, 부모가 떠났다 하여 몸을 준 부모의 은혜를 망각하고 본인이 잘 나서 풍요롭게 산다고 여기니 벌을 받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한없이 그러한 법인데 부처님 가르침으로 평생을 사셨던 부모님 뜻을 받들지 않고, 모든 것을 거꾸로 보는 자체가 바로 빙의예요. 난 K씨를 위한 기도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긴 K씨는 두 아이와 아내를 위해 뭐든지 할 터이니 제발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해 달라고 애원했다.
2시간이 넘도록 나를 괴롭히던 K씨를 뿌리칠 수 없어 길일을 택해 천도재를 했다. 그리고 보름 후 가족들을 위한 구병시식을 하고 나니 K씨는 한 시간이 넘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나는 5년동안 가족을 위해 매일 초를 밝히고, 기도를 할 터이니 자식을 살리기 위한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함께 집에서도 매일 기도를 올릴 것을 약속 받았다.
5년이 흐른 2025년, 두 아들은 의젓한 청년이 되어 나를 찾았다. 새해 인사를 드리고자 방문했다는 아이들은 참으로 맑은 눈을 지닌 순수한 모습이었다. K씨도 사업체를 확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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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심 종정. |
그들을 만나고 나는 고해의 바다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중생들이 "빙의"에서 해방되어 새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중아함경>에 ‘사람이 마음을 일으키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남이 알고, 제가 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은 하늘과 땅도 알지언대, 요즘은 내가 낳은 자식마저 버리고, 포기하고, 등한시 하는 매정한 부모도 있음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부모의 얼굴이 궁금하다.
이번 설 연휴를 맞아 나는 고(故) 김수미씨의 유작이 된 영화 ‘귀신 경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자비정사에 찾아와 시어머니가 무섭게 노려보는 것 같고,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그녀가 구병시식과 시어머니의 천도재를 통해 제 2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에 늘 박수를 보냈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 자비정사 상좌의 꿈에도 들렀다는 얘기를 듣고 몹시 안타깝고, 생전 호탕한 그녀의 웃음소리와 여장부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시사회를 보고온 상좌는 신현준과 고(故) 김수미 배우의 완벽한 연기 호흡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 ‘가문의 영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자연스러운 모자 케미를 보여주었다며 역시 “대배우구나”라고 감탄했다고 전했다. 김수미씨 특유의 입담이 돋보이는 코미디 장르인 영화 ‘귀신 경찰’에서 주인공 동민(신현준 분)이 벼락을 맞은 후 초자연적인 소소한 능력을 갖게 되면서 어머니(김수미 분)와 사건들을 해결하며 가족애를 깨닫고 유대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려낸다고 하니 민족 고유의 명절 정월 초하루 설을 맞아 한 번쯤 극장으로 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부모 자식의 연은 계속된다. 하여 내 분신과도 같은 자식을 불면 날아갈까 아끼고 키우는 게 부모의 심정이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부모가 되면 내 자식의 안위와 행복, 건강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하려 한다. 그런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자식을 살리는 것이다. 빙의는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이 땅에 빙의가 사라지는 날을 위하여.
■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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