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처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아홉 번째 ‘살아있는 자가 머물 터가 아닌 곳에서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난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연재한다.
![]() |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
어제는 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린 고욤 열매를 보면서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가 떠오르는 만추의 절정에 푹 빠져 산사의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은 오후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기온이 급강하여 초겨울이 된 것 같다.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이리저리 나뒹구는 후박나무 잎새를 보고 있자니 마치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는 듯 하여 번민에 사로 잡혔다. 이렇게 2024년의 가을도 또 지나간다. 세월은 어수선하여도 자연은 또 그리 흘러가더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면 머물고 싶은 어디론가 나를 이끌고 데려갈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가을은 자고로 낭만을 지닌 가객과 시인, 화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예술적 소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계절이다. 반면에 가을은 어떤 이에게는 실연의 아픔이기도 하고, 가을을 타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유독 찬바람에 낙엽내음이 짙어지는 이 맘 때쯤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19가 시작 되기 얼마 전 늦은 가을이었다. 중절모를 눌러 쓴 70대 남성 A씨가 자비정사 경내에 들어서더니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절밥을 먹던 ‘토미’라는 강아지도 놀라서 한참을 짖어댔다. 개는 영적인 에너지를 잘 감지하기에 A씨가 울음을 그친 후에도 한참을 짖었다.
수심이 가득한 A씨의 얼굴에는 검붉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눈동자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가득 차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그의 눈 안에 들어앉은 영혼들의 울부짖음에 출가자인 나 역시 고막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A씨는 구부정한 자세로 내 앞에 앉아 딸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A씨는 불안과 강박 증상을 호소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눈을 쉴새 없이 깜빡이면서, 숨소리조차 고르지 못해 참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형상이었다. 안절부절 누군가에게 쫓기듯 고통스러워 보였고, 쉬지 않고 욕을 하는 남성은 원래 점잖은 사람인데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말들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는 전생을 기억하는 여인 K씨가 있다. 그 여인은 생의 처음부터 다음 이어질 생들까지 기억하고 또 미리 볼 수 있었다. 바로 이 여인이 70대 남성 A씨의 딸이다.
조선시대에서 나온 듯한 외모를 한 K씨는 어느 날 살면서 도무지 만날 수 없을 거 같던 한 남자를 만났다. 억겁의 세월 속 윤회와 환생을 거듭하여 다시 만난 남자를 첫 눈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차츰 이전 생들의 기억이 하나둘 주마등처럼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K씨는 몸서리 치게 소름이 돋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눈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평생 어느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지 않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눈물부터 흘렀고, 엇갈린 운명의 굴레 때문인지 지금의 삶에서 사랑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그녀는 오랜 환생 끝에 눈 앞에 나타난 그 남자를 도무지 그냥 보낼 방도가 없었다.
긴 시간 운명이 아니라고 애써 부인했지만 홀리듯 그에게 빠져들어 헤어날 수 없던 그녀에게 남자도 마음을 열어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나날을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씨 그녀의 꿈에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나타나 그녀를 끌고 가는데 지금 사랑하는 남자 전생부터 인연이 있던 그가 그녀의 손을 놓아버리고는 다시는 만날 수 없으니 이젠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그녀를 죽이는 장면을 본 것이다.
칼에 찔려 심장을 움켜진 그녀는 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그 남자의 손을 놓지 않았고, 다시 태어난대도 꼭 다시 만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 꿈을 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두 사람은 그 곳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내며, 1층에서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2층은 남자 친구의 작업실, 3층은 멋진 풍광이 아름다워 매일 함께 있어도 즐거운 대화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 저녁이면 해지는 하늘을 보며 두 사람의 멋진 미래를 그리곤 했다.
그런데 그 즐거움도 잠시 이사한 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는 비보들이 전해졌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 가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 의식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임신 4개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혼자 남자친구의 중환자실을 오가며 극진히 간호하면서 어느덧 출산이 임박한 어느 날 K씨는 또 꿈을 꾸었다.
붉은 핏빛 한복을 입은 여인이 K씨가 현재 거주하는 집의 주인이라며 내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호통을 치더니 "너는 이전 생에서도 내 남자를 빼앗아 갔어!!!"하며 더 큰 소리를 질러 놀라서 깨어난 K씨는 순간 기절해 버렸다. K씨가 3층 루프탑 발코니 난간 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고 뛰어 내리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놀라서 뒤로 쓰러지고 기절한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지난 생의 기억이 하나 둘 눈 앞에 펼쳐졌다.
지난 생에 그녀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매일이 시기와 질투로 전쟁 같은 날의 연속이었고, 결국 사랑하던 남자의 검에 살해 당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집터에 묻히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K씨는 다시 이전 생에 눈물 겨운 사랑을 하던 남자를 다시 만났고, 불행히도 모든 기억이 하나 둘 되살아 나면서 다시금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K씨의 꿈 속에 등장한 붉은 한복의 여인은 현재 남자친구를 차로 치어 중환자실에 있게 한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음주 운전이라고 하면서 선처를 요구하는데 우선은 남자 친구가 사경을 헤매고 있어 다른 건 무의미하다고 합의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K씨가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K씨는 임신 중독이 원인인 것으로 병명은 나왔지만 심한 합병증으로 입원했고,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K씨의 아버지인 A씨도 눈 뜨고는 보기 힘들만큼 말라 예전에 검찰청에서 이리저리 호령하고 다니던 기백은 오간데 없고 앙상한 뼈만 남은 백골과 같았다. A씨는 전직 검사 출신으로 그의 서슬 퍼런 칼춤은 익히 검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검사로 재직 중일 때 그의 손은 마치 노련한 칼잡이 같았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마저 거침없이 수사하여 영장을 청구하고, 그렇게 승승장구 하여 무남독녀 외동딸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운 것이다.
그런 딸이 중학교에 입학 할 무렵부터 신병을 앓듯 시름시름 앓고 방언 터지듯 아무 말이나 하면 그게 또 다 맞아 떨어지니 어디다 속 시원히 상의할 곳도 없고 하여 일찍부터 절에 찾아와 인연이 된 K양과 A씨 부자의 이야기는 참 기구했다.
K씨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절에 와 몇 차례 기도를 올리면 좋아지는가 싶고, 그 증상을 오히려 심연 깊숙한 곳에 감추듯 고요한 상태가 유지되어 더는 빙의로 고통받지 않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불행은 전생의 연이 깊은 남성이 K씨의 눈 앞에 나타난 시점부터 였다. 열애 중인 남성이 유독 이사하고 싶은 동네가 있다고 하니 K씨는 살던 곳을 정리하고, 북향에 누가 봐도 죽은 자가 들어가야 하는 흔히 말하는 묘지터가 맞는데 기어이 비싼 값을 주고 그 집에 들어갔던 것이다.
집의 기운은 음기가 가득해서 부적을 붙이고도 조심해야 한다고 일렀지만 젊은 사람들이라 금새 잊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오래된 골동품들도 사들여 진열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이 두 사람이 골동품 거리를 헤매다 동시에 맘에 들어 집어 온 오래된 색경 즉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을 두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두고 잠이 든 날부터 전생을 보는 꿈이 더 잦아졌다는데. 꿈 속에서 색경이 깨지더니 핏빛으로 물드는 장면을 보면 힘든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K씨의 아버지 A씨 역시 여식의 집 근처로 이사한 이후 같은 꿈들을 꾸는가 하면 불안, 초조, 강박, 틱, 양극성장애 등 수많은 증상을 수반하는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에 꼭 한 번만 와달라고 하여 좀처럼 산사 아래로 나가지 않지만 동행해 보니, 서늘하고 축축한 음기가 꽉 차 있어 죽은 자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해 입구부터 구역질이 났다. 두 집터 모두 죽은 자들의 무덤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가서는 빙의에 시달리고, 음하고 탁한 기운에 병고액난을 피할 길이 없는 흉터 중에 흉터였다.
하여 나는 A씨가 살고 있는 집과 K씨의 집에서 빙의된 터를 발복할 수 있는 길지로 바꿔줄 수 있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K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아버지 A씨를 위한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통해 그들의 병고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하였다. 정성스러운 의식을 통해 천도 되지 못하고 중생들의 몸 속, 집터, 생활공간에서 머무는 원혼들을 천도함으로써 살아있는 우리가 복을 받고, 청정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K씨는 건강한 모습으로 어린 아이를 안고, 남자친구와 결혼할 길일을 잡아 달라고 A씨가 함께 찾아왔다. 코마상태(혼수상태)에서 회복 된다는 것은 의학을 아는 나로서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사경을 헤매다 돌아온 남자친구와 전생부터 못이룬 인연을 이어가며 어여쁜 사랑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중생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잊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찾고, 함께 한다는 것은 하룻밤 만나 술에 취하고, 흥청망청 놀다 헤어지는 세속적인 만남에 견줄 바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환한 모습으로 찾아온 가족을 보니 흐뭇하기 그지 없다.
환생(還生)은 죽은 생명체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윤회라는 말과 함께 자주 쓰인다. 인간은 현세에서 저지른 업에 따라 죽은 뒤에 다시 여섯 세계 중 한 곳에 태어나 내세를 누리게 된다.
그 내세에 사는 동안 저지른 업에 따라 내내세에 태어나는 윤회를 계속한다. 윤회는 열반과 극락 왕생을 통해서만 멈추어지는데 윤회는 사람들의 현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세를 살아가는 중생이라면 모두가 윤회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업이 좋지 못한 기운이 스며든 장소에서 악한 기운으로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도 바로 "빙의"의 한 형태이기에 오늘도 나는 "빙의"에 시달리는 이들 곁에 머물고 있다.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HBN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