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 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 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바라본 K-컬쳐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 봤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 종정의 3번째 지면(紙面) 설법 ‘죽은 자에게도 사랑은 집착이 되더라’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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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공단은 지난 2023년 5월 서울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자비정사를 비롯한 5개 필지를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했다. |
지난 봄 꽃이 화사한 어느 날 여의도의 <폼페이 유물전>이라는 전시회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필자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폼페이 최후의 날을 직접 체험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온 몸이 불에 타는 듯한 화기에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나고 실제로 검붉은 그을음이 코를 통해 머리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고통스러운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음기 가득한 죽은 자의 몸 속이었다. 오래 전 죽음의 문턱에서 사후세계를 미리 보았던 필자임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익숙해질 수 없는 영역이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죽은 자는 물을 유리궁전으로 보지만 산 자는 물로 보고, 살아서는 목이 마르면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는 진언을 통해야만 비로소 감로수 물을 먹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오래 전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원혼일지라도 뜻을 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거나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났거나 억울한 사연이 있는 죽음 뒤에는 더 큰 원념이 뒤따른다.
그리고 죽은 자의 물건에는 반드시 그 원혼이 깃들기 마련이다. 때로는 산 자의 간절한 염원이 마치 생령처럼 누군가에게 달라 붙기도 한다.
일본 헤이안 시대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 가타리(源氏物語)>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을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내려 가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일본 황족 히카루 겐지가 17세 무렵 중추절, 하얀 박꽃이 핀 집의 유가오(夕顔)라는 아리따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 폐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그곳의 모노노케(怨靈)에 의해 유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유가오가 떠나고 슬픔에 잠긴 겐지도 한동안 심하게 앓다가 유가오의 사십구재를 지극정성으로 올려 병이 낫고, 그날 밤 꿈 속에서 유가오를 만나게 되는 애틋한 스토리다.
이 짧은 하룻밤 러브스토리에 무슨 깨달음이 있을까. <빙의(憑依)>를 집필하고, 오랜 세월 빙의로 고통받는 수 많은 이들의 사연을 접해 오면서 인간에게 ‘사랑 만큼 강한 집착을 보이는 감정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남녀간 뜨거운 사랑, 부모 자식간 무조건적인 사랑,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지키고자 하는 신념에 대한 사랑, 스승과 제자간 참사랑 등 시대가 바뀌어도 사랑을 갈구하는 욕구는 변함이 없다.
그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꽃처럼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 여인이 요절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슬픔이 오죽하랴. 유가오가 겐지에게 빙의돼 꿈속에서라도 둘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는 아닐까 하여 소설의 마지막이 궁금해졌던 기억이 난다.
여기 사랑하는 이를 떠나지 못해 살아있는 연인과 함께 살고자 하는 원념이 강한 여인으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다 필자를 찾아온 이의 절절한 사연을 소개하려 한다.
봄빛이 유난히 따사로운 오후, 지인 손에 이끌려 이곳 자비정사 문을 두드린 K씨는 작은 체구에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다. 피부는 하얗고 핏기 없는 외모의 K씨는 필자와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어렵사리 그와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빙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그제서야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놨다.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예쁜 여자친구와 K씨는 몇 개월의 동거 후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둘 만의 스몰웨딩을 계획했다. 둘은 신혼살림 장만에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달달한 나날을 보냈다.
친한 지인들만 불러 결혼식을 하기로 한 날, 신부는 예식장이 아닌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심한 복통으로 드레스를 입은 채 쓰러진 어린신부는 하혈을 하고 말았다. 복중 아이는 그렇게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수자령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린신부 또한 검진 중에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온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이의 청천벽력 같은 암선고에 K씨는 좋다는 약은 다 수소문해 구해 왔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는 다 해주려 마음먹었다. 그런데 사이토카인 방출증후군이라는 면역체계 이상에 항암치료마저 소용없고 손 쓸 겨를도 없이 빠른
암세포 전이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렇게 십 여년이 지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K씨를 안타깝게 여긴 부모와 지인들의 권유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중 매일 밤 꿈에 죽은 신부가 나와 자신과 결혼할 여자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꿈이겠거니 넘겼는데 언제부터인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도 비슷한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죽은 신부와 태아가 함께 K씨를 양 쪽에서 잡아 당기며 함께 놀자고 할 때면 눈을 뜨고 나서도 머리가 무겁고 목덜미가 서늘했다고 한다. 결혼할 여자의 꿈에도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나타나 K씨와 자신을 노려보며 동행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데이트 할 때도 둘이 아닌 셋이 있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고, 밤마다 죽은 어린신부의 긴 머리카락이 자신의 목을 칭칭 감는 환영에 시달린다고 했다.
K씨와 현재의 여자친구가 예식장을 잡고 돌아오는데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한참을 돌아가게 된 곳이 다름 아닌 K씨가 어린신부와 함께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알 수 없는 일들은 늘어 가고 급기야 교통사고까지 났다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이런 미스터리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자 두 남녀는 무섭기도 하고, 죄책감마저 들어 하루하루가 끔찍하다고 했다. 잠자는 게 두려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드라이브를 하다 설마 또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 건 아니지 극심한 스트레스에 두 남녀는 점차 말라갔다.
결국 결혼식을 미룬 K씨는 이제 더는 어린신부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랑했고 여전히 첫사랑으로 가슴 속에 머물지만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들 만큼 고통 속에 사는 건 지옥이라고 했다.
하여 길일을 택해 어린신부와 영혼 결혼식을 올리고, 떠나간 태아를 위한 천도재도 함께 거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할 여자와 함께 절에 찾아온 K씨는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결혼식 날짜를 잡아 달라고 말하는 K씨의 얼굴에서 더는 죽은 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생본무생(生本無生) 멸본무멸(滅本無滅)이라. 생멸본허(生滅本虛)하니 실상상주(實相常住)라.
진리에는 본래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니, 나고 죽는 것은 본래 허망하고 진리의 실상은 영원하도다.
최근 데이트 폭행으로 인한 끔찍한 뉴스를 접할 때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삐뚤어진 방식의 표현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허나 이처럼 생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연인도 동고동락한 부부도 또 부모 자식간도 죽어서는 이승의 인연에 집착하는 미혹한 원혼이 되어 살아서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하여 천도재를 통해 그 미련과 집착을 끊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이들의 밝고 화목한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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