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卽說-5] 묘심 종정, “귀신도 천차만별 빙의도 각양각색”

편집국 기자 / 기사승인 : 2024-09-20 09: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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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꿈을 통해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암시를 하기도

[하비엔뉴스 = 편집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어디서 본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영화 <파묘>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002년 출간된 <빙의>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빙의>는 한국불교법성종의 큰스님인 묘심(妙心) 종정이 K-컬쳐의 주역으로 ‘오컬트’를 이미 오래 전에 내다봤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음은 묘심(妙心)종정의 지면(紙面) 설법 그 다섯번째 "빙의" '귀신'에 대하여 연재한다.

 

 북한산 

 

 빙의(憑依)란 즉, 귀신이 들러붙은 상태! 이를 물리치지 못하면 멀쩡하던 사람들이 병명 없는 병마에 시달리다 점점 기력이 쇠잔해진 후 결국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즉 빙의에 의한 안타까운 저승 행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빙의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빙의에 대한 예고는 대개 꿈으로 나타난다. 병석에 누운 환자에게 죽은 친척이나 친구, 지인이 찾아와 어디 론가 가자 거나 차에 태워 데리고 가는 꿈을 자주 꾸면, 실제로 며칠 후 그 사람은 죽고 만다. 

 

 또 상가나 잔칫집 음식을 먹은 후 병이 발생하여 몸에 한기가 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펴지 못하고 헛 것이 보인다 거나 가위에 눌리는 현상이 나타나면 이미 귀신에게 정기를 많이 빼앗긴 상태이다. 

 

 또 귀신은 꿈을 통해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암시를 하기도 한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거나 관이나 묘지를 보게 되면 사고의 위험을 예시하는 꿈이다. 평온한 일상 중 이런 예지몽(豫知夢)을 꿨다면 반드시 되새겨볼 일이다.

 

 빙의로 인한 괴로움은 이루말할 수 없다. 약으로도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무속인을 찾는 경우가 허다한데, 무속인 중에는 단순히 잡 귀에 씐 상태를 신이 내린 것으로 착각하여 강신 굿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실제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잡귀를 접신(接神)으로 잘못 받아들이면 돌이킬 수 없는 폐인으로 전락케 된다. 설마 그러 하랴 싶지만 이 같은 경우가 비일 비재함을 밝혀 둔다. 

 

 참된 신통력을 겸비한 영매, 맑고 고귀한 신을 접한다는 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하여 신들렸다고 하는 이들의 70% 이상은 단순 빙의 망상 환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잡귀는 음식을 장만하여 실컷 먹여 달랜 후 무섭게 쫓으면 감쪽같이 떨어지는 법이다. 공연히 봉신(奉神)하여 받들기 시작하면 집안에 재앙이 닥치고 병고액난이 오며 결국은 패가망신 한다.

 

 그렇다면 귀신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일단 그 본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고 만지는 고체, 액체, 기체와는 성질이 다르다. 엑토플라즘(ectoplasm) 즉, 뭉클뭉클한 상태로 존재하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을 수 있다. 돌, 나무, 동물, 사람 등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귀신이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인간 형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에게 귀신을 상상하라면 대개 K-Ghost의 대표 격인 처녀 귀신, 즉  하얀 소복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가 오랜 동안 접한 영혼들은 살아 생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여 가족들에게 혹은 연인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생시 모습 그대로 꿈이나 현실에서 툭 하고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귀신에게도 저 마다의 독특한 향이 있다. 긴 세월 천도재를 지낸 경험에 의하면 귀신은 이승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냄새를 달리한다. 지독한 악취가 나는 영이 있는가 하면, 술에 찌든 삶을 살았던 영에게 서는 술 냄새가 풍긴다. 생전에 담배나 향수, 화장품을 즐기던 영은 그 비슷한 향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귀신도 죽은 시신에는 빙의하지 않는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마블 영화 "닥터스트레인지"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스토리를 찾아볼 수 있다. 

 

 몇 해 전, 코로나로 극장 출입이 용이하지 못하던 중 불현듯 극장으로 향한 적이 있다. 제목도 모르고 내용은 더더욱 알지 못한 채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조금 늦은 탓에 한국어 자막은 읽을 겨를도 없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빠져들었다. 시끄럽고 정신산란한 만화인가 하려던 찰나 선명하게 들리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빙의"였다. 내가 쓴 "빙의"가 이렇게 헐리우드 영화에도 소개됨이 뿌듯했다.  후반부쯤 죽은 시체에는 귀신도 빙의하지 않는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빙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나 억울하게 살해당한 영혼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미국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남자 주인공 "샘(패트릭 스웨이지)"을 그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약혼자 "몰리(데미 무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살해된 그는 본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 주변을 서성인다. 

 

 일반적으로 영혼은 사후에 지상에서 3~5일 동안 머물 며 가족들을 지켜보는데, 이는 혼이 생전 육체와 이별하기 전 얼마 간의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함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 듯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영혼은 시체 주변을 배회하고, 장례식 이후에도 자신이 죽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게 된다. 이 같은 귀신들을 지박령(地縛霊)이라 한다. 이들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박령을 쉽게 이해 시켜 주는 영화가, 바로 앞서 소개한 <사랑과 영혼>이다.

 

 영화는 "샘"의 영혼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미련과 자신의 원한 때문에 극락 왕생 하지 못하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 이 영화 속에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고, 항상 지하철만 타고 다니는 외로운 영혼이 나온다. 그가 바로 지박령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박령의 경우 교통사고 현장에 많이 붙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죽은 장소를 맴돌다가 외로움과 원한으로 뭉쳐진 에너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당한 사고와 똑같은 방식의 죽음을 유도하기도 한다.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지박령의 소행이다. 

 

 유사한 죽음을 부르는 것은 단순히 지박령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즉 귀신은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느냐에 따라 가족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죽음을 안기기도 한다. 암이나 뇌졸증, 정신 질환, 교통사고, 익사(溺死), 전사(戰死), 자살 등 다양한 원인으로 사망한 영(靈)은 자신의 죽음과 유사한 형태의 죽음을 부르며 가족과 주변인에게 다가간다. 애정에 한맺힌 영혼의 경우에는 이혼시키기를 좋아하여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이끌며, 그렇지 않으면 간통을 하게 한다. 살인을 한 영은 또다른 살인을 부르기 마련이다. 마작, 투기, 경마, 게임 등에 빠졌던 영혼은 빙의된 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일을 시킴으로써 인생을 망가트린다.

 

 살아서는 애지중지하던 가족이, 오매불망하던 연인이, 금란지교를 나눈 친구가 왜 내게 해를 끼치는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본래 육체라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마음 상태의 집결체와도 같다. 하여 이 미혹함을 끊어내지 못하고 죽었을 때는 망령된 식(識), 즉 마음만 남기 마련이다. 이 미혹(迷惑)하고 망령(妄靈)된 마음은 집착일 수도 있고, 염려와 걱정일 수도 있으며, 미움과 원망일 수도 있다. 가령 살아 생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과 생이별한 부모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식만 생각하고, 집착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럼 취공비집공휴(吹恐飛執恐虧)하던 자애로운 부모가 죽어서는 어떠할까? 

 

 여기 일생을 자식만 바라보다 떠난 영가의 일화를 짤막하게 소개한다. 2005년 겨울이 오기 전 잠시 따뜻했던 어느 날, 낯빛이 유난히 검은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A씨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A씨에게는 자녀가 셋 있었다. 둘은 이혼한 전 처 소생 아들, 하나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처가 낳은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또 사랑하는 애인이 임신 중이라는 말에 출가한 나로서는 기가 막혀 A씨를 내쫒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A씨는 예순이 코 앞인 나이에도 지나친 여성 편력으로 주위에는 평생 여자들이 끊이 질 않았다고 했다. 그게 자랑인 양 말하는 A씨의 표정은 음흉하고 표독 스러웠다. 

 

 그런데 A씨의 머리 위에 하얀 삼베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보였다. 그 여인은 A씨를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기를 느낀다며 히터를 켜 달라는 A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라웠다.

 

 "제게는 어머니가 둘 이예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 그리고 길러주신 어머니. 두 분은 생전에 원수처럼 지내셨고. 낳아주신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만나지 못한 채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셨다고 해요. 그리고 몇 해 전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돌아가셨어요.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 곁에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모셔와 합장(合葬)을 해드렸지요. 저도 제대로 못보고 가신 어머니가 가여워서..."

 

 그런데 지금의 애인이 그 쯤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애인은 건강한 젊은 여성이라 입덧도 없이 8개월 만삭에도 매일 A씨를 찾았다고 했다. 어느 날 둘이 잠이 들었는데 애인의 꿈에 두 명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오더니 복중태아가 서로 내것이라며 애인의 뱃 속에 있는 아이를 내놓으라고 다투는데 하도 배가 아파 가위눌린 듯 소리치다 깼다는 것이다. 

 

 그 날부터 시작된 악몽은 A씨가 살아온 일생을 후회하기에 충분히 넘칠만한 끔찍한 경험이라 했다. 전 처 소생 아들 둘은 평소 왕래가 없었는데, 갑자기 찾아와 현재의 처와 매일 전쟁 같은 싸움을 벌였고, 현재 처의 늦둥이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총명한 아이였는데 원인 불명 정신 질환으로 매일 정신과 약으로 견디고 있고, 현재 임신 중인 애인은 곧 출산 예정일인데 태아의 다리가 보통 태아와 다르게 꼬여 있다고 의사가 걱정 스런 얘길 했다는 것이다. 

 

 A씨의 애인은 심한 우울증과 임신 중독으로 불과 한 달여 새 20킬로 이상 체중도 증가했는데 꿈에서 매일 A씨를 길러준 어머니가 "아가 네가 낳는 아이는 나 줘라!" 소리치고, 낳아준 어머니는 "아가, 내 아들도 못 보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네가 낳는 아이랑 함께 태어날 거니 걱정마라." 얘길 했다는 거다.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생전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둘째 부인에게 빼앗긴 어머니는 한맺힌 삶을 살다갔고, 키워준 어머니는 자식 하나 없이 키운 A씨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다 갔고, 그로 인한 원한과 집착이 얽키고설킨 실타래가 되어 지금의 A씨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말았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또한 A씨의 아무 죄 없는 아들 셋과 태어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 천도재를 통해 미혹한 마음과 집착의 고리를 끊어줘야 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합장한 부모님들을 각각 따로 이장 하도록 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 길일(吉日)이라, A씨만 참석한 가운데 천도재를 거행했다. 그 사이 A씨의 딸이 태어났다. 평소 낳아준 어머니가 불렀다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이 노래를 흥얼 대며 눈물을 흘리는 A씨의 모습 뒤에 아들을 끝내 한 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어 안간힘 쓰는 어머니가 보였다. 스님들의 의식이 끝나고 구병 시식을 할 때 비로소 A씨의 머리 위 한복 차림 어머니는 극락왕생 할 수 있었다.

 

 곧 딸의 백일 이라고 찾아온 A씨와 애인,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또 놀랐다. 아이가 돌아가신 할머니와 너무도 닮았던 것이다. 이것이 윤회(輪廻)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었다. A씨는 애인에게 미안하고, 지금 살고 있는 처에게도 못할 짓이라며 자신은 출가를 하고, 재산을 네 명의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출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며 아이들을 위해 누구 하나 서운함 없이 최선을 다하고 전 처와 현재처, 애인과의 관계도 순리대로 풀어가라 했다.

 

 아직도 과학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귀신에 대해서는 미신으로 치부하고, "요즘 시대에 그런 걸 믿느냐?"는 식의 일방적 매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가사의하고 미스터리 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끊임없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빙의의 세계를 하나씩 풀어 나갈 테지만, 오늘부터라도 빙의(憑依)현상과 영(靈)의 세계,  천도(薦度)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잡귀의 소행으로 인한 불행을 막기 위한 중요한 해결책임을 알았으면 한다.

 

※ 북한산 한국불교 법성종 자비정사 종정 묘심. 필명 : 묘심화.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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