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일탈 아닌 구조적 문제 지적...방지·개선책 제시
[하비엔뉴스 = 홍세기 기자] 최근 의약품 도매업체가 유령법인을 활용해 50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건이 발각됐다. 이에 대한약사회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잇따라 제약 리베이트 문제를 강력하게 거론하고 나서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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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방검찰청. [사진=연합뉴스] |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지난 18일 의약품 도매업체 대표와 대학병원 이사장 등 8명을 배임 수·증재,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수사 결과 도매업체 대표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유령법인을 설립해 종합병원 3곳에 의약품을 공급하면서 병원 이사장 등에게 배당금 명목으로 50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 약사회 "공정한 유통질서 무너뜨리는 범죄" 강력 규탄
대한약사회는 성명을 통해 "실체 없는 유령법인을 만들어 대학병원 이사장 일가에게 50억원이 넘는 금품을 제공하고, 입찰 담합까지 저지른 행태는 국민 보건과 의약품 유통 질서를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범죄"라며 철저한 확대수사와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약사회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대학병원과 의약품 도매업체가 공모한 구조적 유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공정한 유통질서를 무너뜨리고 의약분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규탄했다.
특히 약사회는 보건복지부·검찰·국세청 등 관계 당국에 ▲관련자에 대한 법적 책임 ▲해당 유통업체가 거래하는 모든 의료기관과의 유착 관계 수사 ▲해당 유통업체가 임대하고 있는 약국의 면허 대여 여부 전수조사 등을 촉구했다.
◆ 건보노조 "건강보험 재정 악화 주범...약가제도 근본 개선 필요"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도 조합원 1만4000명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하며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약가제도와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보노조는 불법 리베이트가 초래하는 폐해를 네 가지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첫째, 건강보험 재정 누수 문제로 리베이트를 목적으로 한 과잉·불필요 처방이 약가 원가에 반영돼 건보재정에 불필요한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다. 둘째, 의료비 상승과 환자 부담 가중으로 리베이트가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본인부담금 증가와 의료비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셋째, 환자 건강권 침해 문제로 리베이트를 많이 제공하는 제약사의 약이 우선 처방되면 환자의 상태에 맞지 않거나 효능이 떨어지는 약물이 투여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넷째, 의료의 공정성과 신뢰 훼손으로 금전적 이해가 치료 결정을 좌우하면 의료윤리와 국민의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보노조는 "2024년 한 해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약품비는 27조원으로 5년 누적 증가율이 39%, 연평균 7.8%씩 늘었다"며 "리베이트로 인한 약제비 거품이 증가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성분명 처방 확대 통한 근본적 해결책 제시
양 기관 모두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할 수 없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건보노조는 성분명 처방 확대를 핵심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건보노조는 "왜곡된 약가 구조가 신약 개발이나 연구개발 대신 리베이트 중심 영업을 조장해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건강권을 잠식하고 있다"며 "단속·처벌만으로는 빙산의 일각을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건보노조는 정부입찰제, 개별약가협상, 참조가격제 등 공급자 간 가격경쟁을 통한 약가인하 방안과 함께 상품명처방과 성분명처방의 병행운영 제도화 등을 제안했다.
건보노조는 "성분명 처방은 불법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동일 성분 간 가격경쟁을 유도해 건보재정 절감과 과다·중복 처방 방지에 기여한다"며 "왜곡된 약가와 리베이트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스페인은 대체조제로 매년 2억 유로를 절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연간 최소 5000억원의 건보 재정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제시했다.
이처럼 약사회와 건보노조가 동시에 제약 리베이트 문제를 강력히 거론하고 나선 것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리베이트 사건들이 단순한 개별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특히 성분명 처방 확대를 통한 근본적 해결책 제시는 향후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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