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설계 변경 vs 납품 지연, 방산 수주 경쟁력 시험대
[HBN뉴스 = 이동훈 기자] 대한항공이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을 상대로 계약 이행 지연 책임을 둘러싼 분쟁의 2라운드에 돌입한다. 대한항공이 무인기 인도를 예정된 날짜보다 늦게 하자, 방위사업청이 손해배상 성격의 지체상금을 요구했고, 대한항공이 이에 불복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1심에서 일부 승소한 대한항공은 납품 지연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7-3부(재판장 박연욱, 함상훈, 서승렬 부장판사)는 오는 5일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첫 변론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이 사건의 원고는 대한항공이며 피고는 대한민국정부다. 당초 지난 8월 23일에 1차 기일이 예정돼 있었지만, 재판부 사정으로 일정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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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무인기, 본 기사 내용과는 관계없다. [사진=HBN뉴스] |
이번 소송은 2015년 12월 체결된 4000억 원 규모의 사단 정찰용 무인기 양산 계약에서 비롯됐다. 대한항공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무인기를 납품하기로 했지만, 일정이 지연되면서 방사청은 2081억 원의 지체상금을 부과했다. 지체상금이란 계약 기한을 넘겨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때 지연 기간만큼 부과되는 손해배상 예상액이다.
대한항공은 곧바로 반발, 2021년 소송을 제기하며 “방사청이 수차례 설계 변경을 요구한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2월 1심 재판부는 대한항공의 손을 일부 들어줬다.
재판부는 방사청이 주장한 지체상금 총액 2081억원 중에서 계약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254억원만을 인정했다. 법원은 그러면서 방사청이 납품 대금에서 공제한 658억5000만원 중 404억5000만원은 대한항공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방사청은 즉시 항소했고, 대한항공도 맞대응하면서 2심으로 이어졌다. 이번 2심에서는 방사청의 설계 변경 요구가 ‘예상 가능한 범위’였는지, 대한항공의 대응이 합리적이었는지, 지체상금 산정 기준이 타당했는지 등을 두고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의 이번 승부수를 놓고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온다. 정부기관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지체상금을 다투는 사례 자체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방산사업은 초기 설비 투자와 시험평가, 인증 절차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분야다. 이 때문에 패소로 인한 대규모 손실은 향후 대한항공의 신규 방산 투자 계획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방위산업은 정부 주도의 계약 구조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대한항공과 방위사업청 간의 법적 분쟁을 넘어, 대한항공의 대정부 신뢰와 향후 방산 수주 경쟁력에도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계약에서 지체상금 분쟁은 간혹 있지만, 국방 당국과 대형 방산업체가 법정에서 정면충돌하는 건 흔하지 않다"며 "대한항공이 2심에서 패소하면 지체상금 부담 뿐만 아니라 향후 방산사업 신뢰도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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