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입법 필요성 재 부각
[하비엔뉴스 = 홍세기 기자] 현대자동차가 소송 중이던 비정규직 직원 A씨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 후 고인의 75세 노모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노동 분쟁 사건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입법 필요성이 재 부각될 전망이다.
23일 시민단체와 현대차 등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19일 부산고법과 울산지법에 '소송수계신청서'를 제출해 15년 전 울산공장에서 있었던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벌인 파업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 올해 1월 고인 A씨 대신 상속인인 75세 노모에게 피고 지위를 승계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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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파업 손배 대법 선고에 따른 금속노조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
◆ 소송수계신청의 이면
소송수계신청은 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상속인이 소송을 이어받는 법적 절차로, 중단된 소송절차를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A씨는 2003년부터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다 2010년 11월과 2013년 7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참여해 각각 1시간가량 생산라인을 멈춘 혐의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두 사건의 배상 원금은 6062만원이지만, 그사이 지연이자 등이 붙어 지급해야 총액은 1억7700여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후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22년 10월 현대차가 불법파견 상태에서 19년간 고용한 책임이 있다며 A씨를 현대차 소속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A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돼 일하다 올해 1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법률에 따른 절차를 이행한 것일 뿐이다"라며 구체적인 설명을 피했다.
현대차에서는 과거에도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노동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2014년 11월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측이 제기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2013년에는 사내하청으로 근무하다 해고된 노동자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이 각각 극단적 선택을 했다.
◆ 노동계 "전례 없는 반인륜적 처사" 강력 규탄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 등에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 노동자가 숨진 일이 있었으나, 회사 쪽이 가족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 현장 손배·가압류 문제를 제기해 온 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지금까지 소송 중인 손배 책임을 유족에게까지 넘기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불법파견 투쟁을 하다가 법원으로부터 정규직이라고 인정받은 경우인데 손배를 유지하는 것은 판결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에서는 2012년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조직차장이 자살했지만, 회사가 158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는 유서를 남겼음에도 가족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으며, 쌍용자동차의 경우에도 2009년 정리해고 과정에서 여러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란봉투법의 조속한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현대차의 소송 행태가 노동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례로, 노란봉투법이 제정될 경우 개별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3년 6월 대법원은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파기환송하며 "개별 조합원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는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가 조합원마다 다를 수 있다며, 개별 노동자의 책임 범위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취지로 노란봉투법과 맥이 닿아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활동이나 파업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사용자가 개별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그 책임 범위를 명확히 구분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법안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 법안은 '근로자 범위'를 모든 노무제공자까지 확대하고,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까지 포함하며, 노동쟁의의 개념을 권리분쟁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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