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엔뉴스 = 홍세기 기자] 롯데렌탈이 최근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사모펀드 어피니티PE를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강행할 예정이어서 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것이 핵심으로, 기업 경영진이 소액주주의 이익도 고려하도록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
롯데렌탈 |
◆ 유상증자 구조의 문제점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렌탈의 최대주주인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올해 2월 28일 보유 지분 56.17%를 어피니티PE에 주당 7만7115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당시 시가(2만9400원) 대비 약 2.6배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이다.
그러나 같은 날 롯데렌탈 이사회는 어피니티PE를 대상으로 주당 2만9180원에 총 2119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는 대주주 매각가보다 약 62% 낮은 수준이며, 심지어 당시 시가보다도 낮은 가격이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어피니티PE는 지분율을 56.17%에서 63.5%까지 확대하며 평균 매입 단가를 약 16% 낮추는 효과를 얻게 된다. 반면 기존 주주들은 지분 희석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 주주들의 법적 대응 움직임
롯데렌탈 지분 약 4%를 보유한 VIP자산운용은 이번 거래를 "전형적인 대주주 사익 편취 사례"라고 강력 비판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약탈적 유상증자를 강행한다면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할 수밖에 없다"며 "대주주만을 위한 신주 발행을 결정한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VIP자산운용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직접 항의성 서신을 보내며 유상증자 철회를 요구했다.
김민국 대표는 "롯데그룹이 호텔롯데를 상장하려 할 때 자본시장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롯데렌탈 소액주주연대도 지난 4일 롯데렌탈을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으며, 이후 신주발행 무효 소송 등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는 상법 제396조에 근거해 롯데렌탈 이사회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공식 청구하며 본격적인 주주 공동행동에 착수했다.
지난 8일 기준 1135명의 주주가 참여해 총 50만8405주(지분율 1.40%)를 확보했으며, 참여 주주 및 지분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롯데렌탈의 입장과 1910억원 채권 발행
롯데렌탈은 지난 3일 191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완료했다. 롯데렌탈 측은 "3자배정 유상증자 후 주주가치 훼손이 아니라 오히려 주가가 상승했다"면서 "기존 주주의 피해가 없고 회사의 펀더멘털이 훼손된 것이 없다"고 유상증자 철회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회사 측은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 제5-18조에 따라 발행가액을 적법하게 산정했고, 할인 발행이 아니라 시가로 발행해 주주가치 훼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 문제…배임죄 위반 소지 제기
이번 자본거래를 의결한 롯데렌탈 이사회 구성원들은 최진환 대표이사, 이장섭 이사, 유승원 이사, 최정욱 이사, 최영준 이사로 확인됐다.
이들이 호텔롯데 등 대주주에게 유리하면서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 만큼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거래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배임죄 위반 소지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구주 매각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함으로써 기존 주주의 주식 인수 기회를 배제했고, 불공정한 발행가액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 상법 개정안과의 충돌
특히, 이번 사례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주주충실의무 위반'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발대식에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위원장은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롯데렌탈을 직접 언급했다.
VIP자산운용은 "롯데렌탈 유상증자는 상법 개정 시 주주충실의무 위반 1호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이 Orchard, UOP 등 다수의 사례에서 특정 주주에게 유리한 거래를 이사회가 승인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 시장에 미치는 영향
이번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롯데렌탈이 지난해 9월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시하는 주주중심 경영'을 약속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발행주식총수의 20%에 달하는 대규모 신주를 발행한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21년 공모가 5만9000원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현재 3만원 이하의 주가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거래가 진행되는 것은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롯데렌탈의 유상증자는 아직 주주총회 승인을 거치지 않았으며,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 등 절차가 남아 있어 계획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롯데렌탈 측이 철회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만큼, 주주들의 법적 대응과 상법 개정안의 적용 여부가 향후 전개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이재명 정부의 소액주주 보호 정책과 기업 경영진의 주주충실의무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저작권자ⓒ HBN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