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표준정관‧주민대표회의 운영규정에 ‘의결권 행사 불가’ 명시
SH공사,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에 특정사 ‘입찰자격 박탈’ 요구하기도
[하비엔=윤대헌 기자]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진흙탕’ 행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재개발정비사업 주민대표회의에서 진행한 ‘대우건설 참가자격 박탈 여부 찬반 투표’에 의결권이 없는 감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흑석2구역 재개발사업 주민대표회의는 지난 25일 오후 6시 시공사 선정 입찰과 관련해 대우건설의 참가자격 박탈 여부를 두고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24명이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찬성 12명, 반대 12명으로 이 안건은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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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조감도. |
문제는 투표자 가운데 주민대표회의 소속 3명의 감사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표준 정관에 따르면 ‘감사는 이사회나 대의원회에 참석해 업무수행을 적법하게 하는지를 관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감사의 이사회 및 대의원회 참석 권한을 인정할 수 있으나, 이사회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의결권은 인정할 수가 없다’고 규정돼 있다.
주민대표회의 운영규정 제29조(주민대표회의 의결방법) 역시 ‘감사는 감사직무와 관련된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게다가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앞서 SNS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제6차 주민대표회의 제1호 안건 ‘입찰 참가자격 박탈 대상 업체의 입찰 참가자격 박탈의 건’은 주민대표위원 25인 중 감사 3분은 의결에 빼고 의결토록 하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정관이나 운영규정은 사실상 법적 제재 요건에 속하지는 않지만, 정비사업 진행 시 논란을 우려해 이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흑석2구역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대우건설 입찰자격 박탈 안건 표결에서 규정과 위원장의 공언이 무시된 채 3명의 감사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것일까.
위원장은 특히 법률자문까지 받아 감사들에게 의결권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져 ‘대우건설 자격 박탈을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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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이모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보낸 SNS 메시지 중 일부. |
익명을 요구한 조합의 한 구성원은 “위원장이 감사에 의결권 주지 않고 본인도 투표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번복했다”며 “위원장은 특히 투표 결과가 ‘부결’로 나오자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 결과로 인해 대우건설은 입찰자격이 유지돼 흑석2구역의 향후 입찰은 경쟁입찰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합원들은 더 좋은 조건으로 시공을 맡길 수 있는 경쟁입찰에 대해 회의적이다. 주민대표회의 집행부가 특정 시공사를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주장이다.
만약 특정 건설사를 밀어주기 위해 위원장이 감사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면 이는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흑석2구역의 경우 그동안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시공사에 대해 경고조치 등을 악용하면 또 다시 혼탁해질 수 있다”며 “따라서 문제 발생 즉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사업이 원활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SH의 ‘막가파식’ 행정은 더욱 논란이다. SH는 앞서 지난 17일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에게 ‘대우건설의 입찰자격을 박탈하지 않으면 주민대표회의와 협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 논란을 일으켰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위반 사안을 놓고 삼성물산에는 면죄부를, 대우건설에는 경고장을 줬다”며 “SH의 이같은 이중 잣대로 인해 입찰 전부터 업계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난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재개발 1호로 꼽히는 흑석2구역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99-3 일원을 재개발하는 사업으로, 이곳에 지하 7층~지상 49층 규모의 아파트 1216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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